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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민주당 돈봉투 의혹과 ‘바퀴벌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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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4-22 17:00:39   폰트크기 변경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두고 민주당 일각에선 ‘오래된 관행'이란 인식을 보이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행하기 쉬운 관행이라도 실정법에 어긋나고 법망에 걸려든 이상, 처벌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오래전에 회자했던 ’바퀴벌레론‘이 보여주고 있다.

이번 사건의 요지는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캠프가 현역의원에게 300만원, 캠프 지역상황실장에겐 50만원씩 총 9400만원을 뿌렸다는 의혹이다. 당내 일각의 변명은 일단 ‘금액이 크지 않다’는 인식에서 시작된다. 장경태 최고위원은 19일 “국회의원이 300만 원 때문에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바꿀 가능성은 매우 낮다. 상황실장도 마찬가지다. 50만 원은 한 달 밥값도 안 되는 돈이다. 그래서 이런 돈은 아마 실비이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좌장인 같은 당 정성호 의원도 18일 “국민들이 전체적으로 큰 금액이라고 생각하지만 대개 실무자들의 차비, 진짜 소위 말하는 기름값, 식대, 이런 정도 수준”이라고 말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사과문을 올렸다.

이들 발언의 기저에는 이번 금액이 실비(實費) 수준이고 정치권에선 흔히 이뤄지는 관행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들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지역위원장(국민의힘에선 당협위원장)이 동원할 수 있는 핵심당원을 읍면동 별로 한 명씩 잡더라도 전체는 수십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자비(自費)로 움직이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한다. 예컨대 후보자가 지역에 왔을 때 이들을 포함한 당원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하기 위해선 흔히 말하는 ‘밥값’과 ‘기름값’ 정도는 제공해야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게 하는 게 지역위원장 체면이고 또 당원에 대한 예의로 통하는 게 우리 정치문화의 현주소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정법은 엄연히 이를 금지하고 처벌규정까지 두고 있다. 정당법 제50조는 ‘정당의 대표자로 선출되게 할 목적으로 선거인에게 금품·향응 등을 제공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이런 행위를 지시·권유·요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장 의원이 언급한 ‘밥값, 기름값’은 전당대회 같은 ‘전국 단위의 최고 대의기관 회의’에 한해 제공이 가능하다는 단서조항을 두고 있다. 이번 돈봉투 사건은 정치권에선 관행으로 통할 정도로 다반사한 일인데, 운이 없어 걸려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동료 의원으로서 안타까움을 표시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국회에서는 19년 전에도 실정법에 어긋나는 관행의 처벌 문제를 놓고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17대 국회 초입인 2004년 6월 본회의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박창달 의원 체포동의안’이 상정돼 찬반을 놓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강금실 법무부장관 사이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17대 총선에서 대구 동을에 출마해 당선된 박 의원 혐의는 16대 때 전국구(비례대표)이면서 출마가 예상되는 지역구에 '국회의원 박창달 사무소'를 열고 정치자금으로 급여를 지급하는 4명의 유급직원들을 고용한 뒤 산악회 행사에서 사전선거운동을 했다는 것이다.

판사 출신 같은 당 주호영 의원은 강 장관을 향해 “박 의원 혐의 대부분이 ‘이번에 국회의원에 출마하는 박창달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런 정도에다가 한 두 경우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면서 체포동의안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강 장관은 “단순한 출마 의사표시냐, 아니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지지 호소냐가 중요하다”면서 ‘잘 부탁드립니다’를 ‘지지호소’ 쪽으로 보는 듯한 답변을 했다.

이어 검사 출신 같은 당 김재원 의원이 단상에 올라 이른바 ‘바퀴벌레론’을 끄집어냈다. 그는 “수사 관계자에게 ‘선거에 출마한 사람 치고 박 의원처럼 사무실 설치하고 지역 주민에게 인사해 보지 않은 사람 누가 있느냐’라고 했더니 그 분 말씀이 ‘부엌 싱크대 밑에는 바퀴벌레가 우글거리지만 바퀴벌레 잡으려고 싱크대 밑을 뒤지지는 않는다. 다만 바퀴벌레가 밖으로 나오면 그것 안 잡을 수 있냐’고 답했다”면서 “수사기관 눈으로 보면 우리 국회의원 모두가 언제든지 잡힐 수 있는 싱크대 밑의 바퀴벌레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라면서 여야 동료의원들의 ‘동병상련’을 자극했다.


체포동의안은 부결됐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100석에 불과했지만, 여당인 열린우리당(129석) 등 타당 의원들이 ‘반대론’에 동조해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박 의원은 이후 불구속 기소돼 이듬해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확정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바퀴벌레론’은 관행 같은 범죄행위도 수사 당국에 적발된 이상, 법의 심판은 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정착됐다.

당대표 경선에서 관행적으로 오가는 ‘밥값과 기름값’이 총선과 대선에선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직을 동원하는 선거라는 점에선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선거에 출마한 정치인들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말을 내뱉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법조문과 현실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하소연일 것이다.


의원들이 본인들 편의를 위해 국민적 비난을 무릅쓰고 법 개정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법 개정 이전에는 스스로 만든 법규를 존중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감수(甘受)하겠다는 자세를 보이는 게 입법부 위상을 지켜나가는 길일 것이다.

권혁식 기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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