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지난 2월 고금리발 부동산 시장 한파 속에 ‘KB 2023 부동산세미나’에모인 전문가들은 올해 주택시장의 연착륙 가능성을 점쳤다. 국내 주택담보대출의 부실 위험이 구조적으로 높지 않고,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가 지속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주택시장 헬게이트를 연 건 ‘집값 경착륙’이 아닌 ‘전세사기’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징검다리인 줄 알았던 ‘전세’는 임차인의 ‘근심거리’로 전락했다. 곳곳에선 전셋값이 매매가격에 육박해 보증금을 떼일 위험이 높은 이른바 ‘깡통전세’ 문제가 터졌다. 2년 전 최고점에서 전세 계약을 하고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세입자들은 전국에서 극성을 부리는 ‘전세사기’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전국에서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지역은 총 26곳으로 집계됐다. 전세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도와 볼리비아 등 몇 안되는 국가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임대 형태다. 혹자는 전세를 합법화된 ‘사적금융’이라고도 말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2년간 돈을 빌려주고 만기가 되면 돌려받는 전세는 2년 만기 채권과 비슷하다.
금융시장 관점에서 보면 전세는 ‘갭투자’를 하는 집주인의 레버리지 수단이자 각종 대출제도와 연결되어 있는 일종의 금융상품이다. 전세라는 제도가 ‘금융’과 깊이 연관되면서 변동성이 커지다 보니 현재 어려움을 겪는 부동산 문제는 모두 금리(부동산대출)와 연결돼 있다.
전세보증금 규모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폭등시기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7~2022년) 국내 전체 ‘전세보증금(전세+반전세)’ 규모는 2017년 말 770조9000억원에서 2022년 말 1058조3000억원으로 5년 새 37.3% 늘었다.
금융권 안팎에선 전세자금대출 폭증세가 이어졌던 2년 전부터 경고음이 나왔다. 2021년 10월 KB금융ㆍ주택학회의 ‘주택시장 안정화’ 세미나에서 전세대출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시키고, 원리금 상환 방식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건축왕ㆍ빌라왕’ 등의 다주택 임대사업자들은 ‘무자본 갭투자(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 방식으로 집합주택을 대거 사들인 뒤 임차인의 보증금을 떼먹는 수법을 사용했다.
전세사기 대란에 금융당국은 분주하다. 주택 경매 유예, 저금리 대출 지원이 우선 실시됐다. 하지만 이건 임시방편이다. 애당초 거액 담보 건물 입주자는‘전세보증보험’도 가입하지 못한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선순위 보증금 및 체납에 관한 정보 요구권한을 부여하고, 임차권의 등기를 신속화하는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그동안 정부는 강력한 대출 규제를 통해 주택 수요를 관리해 왔다. 그런데 전세대출은 전세보증금의 최대 90%까지도 받을 수 있도록 예외를 인정하면서 풍선효과가 발생했다. 전세자금대출을 DSR 산정에 포함시키는 등 다각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 전세 리스크를 예방해야 할 것이다. 불완전판매처럼 위태로운 ‘전세금융’ 제도 보완에 정부가 시급히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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