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원짜리 동전에 박제하기엔 큰 보물
사랑ㆍ정성ㆍ정의ㆍ자력이 가치회로의 뿌리
지도자는 개인 욕망과 당파 이익 누르고
수양 통해 국민 하나로 보는 마음 키워야
기업들은 자기자본 절반 이상 확보하고
임진왜란 예측하듯 미래 내다볼 수 있어야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순신 장군은 어떤 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꿋꿋하게 국민과 나라 사랑을 온몸으로 실천한 분입니다. 모든 국민이 ‘이순신 정신’을 본받을 수 있도록 널리 알려야 합니다.”
‘충무공 전도사’로 잘 알려진 김종대(75ㆍ사법연수원 7기) 전 헌법재판관은 오는 28일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장군 탄신 478주년을 앞두고 <대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만 이순신을 찾지 말고 미리 그 정신을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부산 연제구 여해재단 사무실에서 <대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이승윤 기자 leesy@ |
김 전 재판관은 공군본부 군법무관으로 복무하던 1975년 봄 서울 대방동의 한 서점에서 고(故) 이은상 선생의 ‘충무공의 생애와 사상’이란 책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이순신과 처음 만났다. 이때부터 이순신의 삶에 빨려들어 50년 가까이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는 부산지법 동부지원장으로 재직하던 2002년 ‘이순신 평전’을 낸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이순신, 하나가 되어 죽을힘을 다해 싸웠습니다’에 이르기까지 이순신을 새롭게 조명하는 책을 여러 권 썼다. 지금도 부산ㆍ여수ㆍ서울 여해재단 고문과 부산대첩 기념사업회 명예 이사장을 맡아 이순신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의역(意譯) 난중일기’ 집필에 나섰다.
그는 “이순신이 임진왜란을 예측하고 거북선을 만든 것처럼, 우리 기업들과 리더들도 미래를 내다보고 올바른 상황 판단을 해야 한다”며 우리 기업만의 ‘비밀 병기’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김 전 재판관과의 일문일답.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을 맞은 소감은.
4월28일은 국가기념일이다. 하지만 공휴일도 아니다 보니 무슨 날인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다. 흔히 ‘우리나라 위인들 중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물으면 “이순신”이라고 답하지만, ‘거북선을 만들고 왜구를 무찔러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것 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이순신을 영화나 100원짜리 동전, 관광 안내 책자 속에 박제해놓고 그를 ‘기린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제된 상태로 묻어두기엔 이순신은 너무나 큰 보물이다. 이 보물을 캐내면 오늘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찾을 수 있다. 이순신 정신을 배우고 이웃에도 알려 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자는 게 여해재단의 사업 목적이다.
이순신 정신이 무엇인가.
나라와 백성에 대한 ‘사랑(愛)’과 맡은 일에 대한 지극한 ‘정성(誠)’, 바른길로 나아가는 ‘정의(正義)’, 스스로 이뤄내는 ‘자력(自力)’, 이 네 가치가 이순신이 마음속에 가진 가치회로의 뿌리다. 이 가치들이 어떤 경우에도 단 한 번의 오작동 없이 이순신의 정신체계를 지배해 ‘23전 23승’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선 이순신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죽어도 좋다’는 극한의 사랑을 기반으로 모든 일에 100% 정성을 기울였다. 중국 사서(四書)의 하나인 ‘중용’에는 ‘무성무물(無誠無物)’이란 말이 나온다. 정성이 없으면 단 하나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랑은 목표를 설정하고 열정을 불러일으키지만, 끊임없는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성공을 이룰 수 없다. 두 가치가 동전의 양면처럼 합쳐져야 성공할 수 있다.
명량해전을 앞두고 배 12척과 도망병들만 남았을 때 불과 한 달 만에 하나로 뭉쳐 기적같은 승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이순신이 권력 대신 사랑과 정성으로 부하들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랑과 정성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게다가 바른길이 아니면 거부했고, 정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성공은 언젠가 무너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 힘을 바탕으로 얻는 성공이 아닌, 남에게 의지하는 성공도 사양했다. 우리 외교 현실을 보면 걱정스러울 때가 많은데, 외교도 남이 시키는 대로 떠밀려 하면 결국 그 외교의 이익은 남의 것이 돼 버린다.
결국 이순신 정신이란 사랑과 정성이란 기본 가치에 자력과 정의라는 가치가 더해져 완성된다. 이를 지닌 사람을 ‘작은 이순신’이라고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작은 이순신을 길러내는 일이다.
이순신 정신이 주는 교훈은.
우리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다.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왕이 나라의 주인이었고, 백성은 그저 통치의 대상이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 군정을 거쳐 1948년 7월17일 헌법이 공포되면서 비로소 국민이 나라의 주인 자리에 오르게 됐다. 우리 반만년 역사에 이것보다 더 큰 혁명이 어디 있나. 반면 기존에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과 신하들은 ‘공무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헌법 제7조에 규정된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 지위를 갖게 됐다.
이순신은 몇백년 전 인물이지만 이미 국민에 대한 봉사자 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지금 공직자들은 모두 자신과 당파의 이익만 생각할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다. 여야가 서로를 적으로 보는 이유는 자기들의 위치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통합’을 강조했는데, 사랑이 없으면 통합을 이룰 수 없다. 상대방을 통합이나 협력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적대시하기만 한다면 어떻게 소통하고 통합할 수 있겠나. 대한민국은 두 개가 아니다. 그래서 지도자들은 개인적인 욕망과 당파의 이익을 누르는 ‘수양’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보는 마음을 키워나가야 한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100% 사랑을 바칠 때 기적이 나온다. 지도자라면 마땅히 자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위해 이 법이 필요한데 다수당인 야당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무릎 꿇는다면, 도와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러면 우리 국민이 통합될 수 있다.
이순신 정신이 기업들에 시사하는 바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주와 임직원의 열정과 정성으로 성공을 이루지만, 탈세나 불법행위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 대우그룹도 고(故) 김우중 회장의 열정과 정성을 바탕으로 성공했지만, 분식회계라는 부정이 원인이 돼 결국 무너지지 않았나.
기업들도 이순신 정신에 기반을 두고 정의로운 길로만 나아가길 바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한 법의 제약을 기업들이 피하려 하는 경우가 있는데, ‘법을 다 지키고 언제 성공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 일반화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은행 돈만 갖고 기업을 운영하면 어느 순간 그 기업은 은행의 관리기업이 돼 버린다. 자기 자본을 절반 이상이라도 확보하라는 게 이순신 정신이다.(웃음)
경제위기 극복에도 이순신 정신이 필요해 보인다.
이순신이 거북선을 만든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 우리는 정확도나 살상력이 떨어지는 활을 쏜 반면, 왜구는 총을 쏘기 때문이었다. 총알을 막고 돌진하기 위해 기존의 판옥선에 뚜껑을 덮고 뾰족한 침을 박았고, 불이 붙지 않도록 철판을 깔았다.
결국 이순신은 ‘머지않아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상황 판단을 정확하게 해 냈고, 그때 우리가 살아날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창의력을 바탕으로 거북선을 만든 것이다. 창의력도 사랑과 정성에서 나온다. ‘가만히 있으면 다 죽는다. 살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고민하다보니 거북선을 만들어냈고, 임진왜란 초반 해전에서 거북선의 활약을 기반으로 통쾌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 기업들도 금리나 해외 경제 등에 대한 예상을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잘 판단해 파도를 막아내고 넘기 위해 거북선 같은 ‘비밀 병기’를 만들어야 한다. 비밀 병기를 만들어낸 기업은 두려워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반면, 미래를 예측조차 하지 못한 기업은 위기가 닥쳤을 때 도망갈 수밖에 없다.
‘이순신 승전지 순례길’ 개발이 경남의 1호 관광사업으로 선정됐다.
이순신에 대한 영화를 만들거나 동상을 세우는 일도 중요하다. 부산과 경남, 전남이 추진하고 있는 남해안 관광벨트 개발사업도 마찬가지다. 다만 형식적인 사업으로 그쳐서는 안 되고, 이순신의 정신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박제된 이순신을 단지 오락 수단으로만 끌어내거나 관광 수입을 통해 돈 버는 일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 과정에서 이순신재단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순신재단 설립ㆍ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논의는 답보 상태인데.
작은 이순신들이 국민들에게 이순신 정신을 널리 알리고 사회 각계에서 활약한다면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여해재단을 중심으로 ‘이순신 학교’를 열어 양성사업을 하고 있지만,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너무 미미하다. 동상이나 기념관을 세우는 사업도 이순신 정신의 핵심 가치를 연구하는 작업이 전제돼야 한다. 국가에서 투자해 이순신의 핵심 가치를 연구하고 널리 교육해 인재를 키우는 등 우리나라 정신 교육을 위한 백년대계를 세우려면 이순신재단 설립ㆍ운영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제20대 국회에 이어 이번 제21대 국회에도 법안이 세 건이나 발의돼 있지만, 국회 소관 상임위인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에 회부된 이후 논의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안타깝다.
부산=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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