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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 수사보다 국민 기본권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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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5-31 06:00:15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개인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 30일 한 방송사 기자의 주거지와 차량, 회사 등을 상대로 경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지난해 인사청문회 당시 국회에 제출된 한 장관과 가족의 개인정보 자료가 외부로 새어나가는 과정에 해당 기자가 연루됐다는 이유다. 압수물에는 기자의 휴대전화도 포함됐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피의자의 혐의를 구체화한다. 압수수색은 검찰이 청구하고 법원이 발부한 영장 집행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매년 적게는 87.3%에서 많게는 91.7%를 기록했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 10건 중 9건은 발부됐다는 의미다.

게다가 수사기관이 ‘먼지떨이’ 식으로 압수물을 싹쓸이하듯 담아온 뒤 이른바 ‘별건 수사’를 위한 수단으로 쓰는 경우도 많다 보니 압수수색을 받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인의 사생활 관련 정보를 모두 담고 있는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오히려 인신 구속보다 더 치명적ㆍ치욕적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이 같은 관행에 제동을 걸기 위해 대법원이 추진 중인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안 시행이 잠정 연기됐다. 수사기관의 거센 반발 때문이다. 당초 대법원은 이달 안에 최종안을 확정한 뒤 다음달 1일부터 시행할 계획이었다.

개정안은 법원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기 전 ‘대면 심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휴대전화ㆍ컴퓨터 등 피의자의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서에 검색어와 검색 대상 기간 등 ‘영장 집행계획’을 기재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 등이 핵심이다. 지금은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이 주로 서면심사를 통해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지만, 앞으로는 필요하다면 검사 등 수사기관 담당자를 불러 대면 심리를 하는 등 영장 남발을 막겠다는 취지다.

반면 검찰을 위시한 수사기관들은 수사의 밀행성과 신속성을 해칠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반대하고 있다. A부장검사는 “법원이 그동안 별다른 고려 없이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해 놓고, 이제 와서 ‘영장 청구를 남발했다’고 검찰을 비판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압수수색 영장 발부 전 대면심리 도입 등은 강제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디지털ㆍ통신 기술 등의 발전에 따라 강제수사의 중심축이 기존의 ‘인신 구속’에서 전자정보 등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그동안의 ‘영장 남발’에 대한 반성적 고려는 반드시 필요하다.

대법원은 다음달 2일 토론회를 통해 검ㆍ경 등으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들은 뒤 제도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법원과 검찰은 저마다 관련 실무 경험이 많고 법리에 능한 전문가들을 토론자로 포진시켰다.

수사의 밀행성과 신속성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법통제 강화를 통한 국민의 기본권 보호가 훨씬 더 중요하다. 법률이 아닌 대법원 규칙 개정만으로 부족하다면,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디 형사소송의 최고 이념인 ‘실체적 진실 발견’과 적법절차에 의한 ‘인권 보장’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제도 도입 이후 ‘운용의 묘’를 살리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길 바란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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