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가 살얼음판입니다.” 최근 한 행사장에서 만난 대형건설사 임원은 근황을 묻는 인사에 이같이 답했다. “수주가 잘 안되시는구나”라고 위로하고 지나치려다 후회했다. 요즘 화두는 수주가 아니라 사고다. 사고를 수습 중인 임원, 언제 터질지 모를 사고에 전전긍긍하는 임원까지 다들 표정이 어둡다. 자재ㆍ공사비가 치솟은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맹위를 떨치면서 건설산업계가 패닉 상태다.
실행률(투입비용 대비 원가율)이 나쁜 공사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니 공공ㆍ민간공사 할 것 없이 유찰이 반복된다. 수주한 현장도 분양ㆍ안전 걱정에 마냥 착공을 미룬다. 대한건설협회 통계를 보면 올 4월 누적 수주액이 작년 동기 대비 44% 급감했다. 1분기 건축물 착공면적도 34.7% 줄었다. 이는 3년여 후 국민들의 일자리ㆍ주거불안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불만도 적지 않다. 50개 건설현장을 운영하는 대형사라면 49개 현장을 아무리 잘 완공해도 1곳의 사고에 비판포화를 맞는다. 형벌, 행정처분에 회사 이미지도 만신창이가 된다. 정부 당국자들의 공공연한 망신주기도 잦아졌다. 한 중소건설사는 한국건축을 대표할 랜드마크를 난고 끝에 완성해 국내외 고위급 인사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완공 직전 다른 현장에서 생긴 인명사고에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 ‘주택건설의 날’, ‘건설의 날’ 등 건설산업계의 주요 기념일 시상대에서 대형건설사들이 자취를 감췄다. 정부포상 추천기준의 벽을 못 넘어서다. 산업안전보건법령상 산업재해 등과 관련해 명단이 공표된 사업장과 그 임원 등은 배제하기 때문이다. 배제 대상인 임원은 대표이사, 이사는 물론 현장소장 등도 포괄한다. 장관상 등이 포함된 민간단체의 포상도 대형사들엔 언감생심이다.
단 하나의 현장이라도 안전과 품질을 철저히 지킨 작은 건설사의 노력은 마땅히 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연간 50개 내외 현장을 조금 쿵쾅거리더라도 무리없이 잘 마무리한 대형사들도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건설산업 기여도 면에선 세계를 누비며 숱한 랜드마크를 지어 K-건설을 글로벌 시장에 각인시킨 공이 오히려 작지 않다. 정부포상 추천기준은 빙산의 일각이다. 지난 3월 시행에 들어간 합산벌점제를 포함해 대형건설사들을 범죄집단으로 내모는 정책 및 제도가 적지 않다.
범건설산업계가 ‘건설산업 이미지 개선 캠페인’에 진력한 2010년대 중반에 “좋은 일 많이 하면 뭐 하나, 어물전 꼴뚜기 같은 한두 업체가 사망사고 내면 도루묵인데…”란 자조섞인 목소리가 높았다. 당시에는 사고를 낸 대형사 한 곳만 문을 닫도록 하면 바뀌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상당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이게 가능해졌지만 건설현장 사고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처벌만으론 한계가 있다. 근본적 해결책은 건설인들이 지난 수십년간 강조해온 ‘제값 주기’, 그리고 ‘제대로 된 공기(공사기간) 주기’란 생각이 든다. 최근 한 네티즌의 댓글이 눈에 띄어 남긴다. “안전장구류 다 차고 일해봐! 니들이 요구하는 물량을 제 시간에 채울 수 있나. 돈 안드는 안전이 어디 있나? 돈은 아끼고 물량은 채워야 하고, 안전까지 지켜야 하고, 그런 능력 있으면 노가다를 왜 하니?”이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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