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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신탁공사 먹이사슬 최하단에 위치한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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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6-20 14:24:27   폰트크기 변경      

모 신탁공사의 토지신탁계약서에서 명기된 불공정 조항.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관련 부담을 모두 배상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천재지변, 전쟁 제외하면 공사비 증액ㆍ공기 연장 안 돼

책임준공 기간 못 맞추면 패널티…토지신탁계약서 명기


[대한경제=정석한 기자]  # 2020년 6월 30일 중견 건설사인 A사는 대주단 갑(甲), 신탁사 乙(을), 시행사 병(丙) 등과 서울시 내 오피스텔 300실을 2022년 12월 30일까지 준공하기로 하고 ‘책임준공 관리형 신탁계약’을 체결했다. 여기에는 A사가 1차적으로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기로 하고, 만약 A사가 이를 이행하지 못한다면 2차적으로 신탁사가 2023년 6월 30일까지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는 내용이 담겼다.

최근 건설자재 수급불안과 공사비 급등, 화물연대 파업 등을 이유로 A사는 책임준공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 이에 대주단, 신탁사 등과 협의해 준공기간을 3개월 연장하기로 했으며, 올 3월 완공시켰다. 하지만 A사는 준공기간 연장의 패널티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대출 원리금(원금+이자)의 1%를 지급해야 했다.

아울러 2년여 동안 30% 이상 늘어난 공사비는 물론, 3개월 연장된 공사에 대한 간접비도 지급되지 않아 내부 유동자금으로 해결해야 했다. A사 관계자는 “분양경기가 불투명해 자금회수가 막막하다”며 “이런 사업장이 2개 더 있는 탓에 법정관리 신청까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A사의 경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60여 곳의 신탁공사 사업장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탁공사에는 시공능력평가액 순위 100위 권 밖의 중소사들이 집중 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후폭풍이 우려된다.

문제가 되는 신탁공사는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 방식을 취한다. 대주단(금융기관)-시행사(위탁자)-신탁사(수탁자)-시공사(건설사) 등의 구조다. 이 구조에서 시공사가 최하단에 위치하면서 온갖 리스크를 안고 있다.

먼저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건설자재 수급불안이 이어지면서 책임준공 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A사와 같은 패널티는 물론, 기간연장에 따른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게다가 오피스텔 등 시설물을 완공한 경우라도 PF채무의 중첩적 채무인수를 져야 한다. 여기서 중첩적 채무인수란 해당 신탁공사에 투입된 대주단의 자금을 신탁사와 시공사가 함께 갚아야 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1차적으로 시공사가, 2차적으로 신탁사가 지게 된다.

이 같은 불공정 조항은 토지신탁계약서에서 그대로 명기돼 있다. <대한경제>가 입수한 모 사업장의 토지신탁계약서에 의하면 천재지변, 전쟁을 제외하고는 ‘기타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정되지 않아 사실상 공사비 증액 혹은 공사기간 연장이 허용되지 않는다.

즉 전쟁으로 인한 건설자재 수급불안, 화물연대 파업, 건설노조 불법행위 등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가 발생하더라도 결국 시공사가 모든 부담을 껴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토지신탁계약서는 주계약과 특약(특별계약)으로 구성돼 있는데, 시공사에 대한 불공정 조항은 대부분 특약에 기재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을 회피하고 있다.

실제로 시공사 관련 토지신탁계약서의 불공정 조항에는 ▲책임준공 의무 ▲선급금 미지급 ▲신탁사의 미지급 공사비에 대한 이자 및 지연손해금 면제 ▲분리발주 공사부문에 대한 시공사 연대책임 등으로 가득차 있다.

아울러 시공사가 책임준공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시공사 교체에 필요한 모든 비용과 수분양자에 대한 입주지연배상금 등도 부담하도록 돼 있다.

서울시 내 소재한 B 건설사 관계자는 “오피스텔을 완공한 경우 물적인 담보가 존재함에도 중접척 채무인수까지 부담시키는 건 정말 불합리하다”며 “그나마 부동산 경기가 나은 상황이라면 분양수익을 통해 이를 상쇄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이마저도 어려워 내부 유동자금으로 견디다가 문을 닫는 중소사들이 잇따라 발생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강조했다.

경기도 소재한 C 건설사 관계자는 “7월 민주노총이 지휘하는 총파업, 소위 ‘하투(夏鬪)’가 발생해 장기화하면 이에 대한 책임은 신탁공사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 위치한 시공사들의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건설ㆍ금융 관련 정부부처들의 시급한 대안 마련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석한 기자 job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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