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산연, 331개 건설현장 조사
2곳 중 1곳, 만족도서 부정적
현장 84%가 '공사지연' 경험
1년간 3회 이상 불량 지적 때
1년 정도 계약 체결 제한 수준
중기부 결단 없인 해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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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최지희 기자] # 수도권 LH 공공분양 아파트 건설을 수행 중인 A건설사는 내부 마감 공사용 납품 자재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주방가구 목재 코팅 상태가 불량한 것은 둘째치고 가구가 흠뻑 젖은 채로 현장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야외에 오랜 기간 방치된 듯 일부 가구는 목재 뒤틀림도 발견됐다. A사는 해당 자재업체에 품질 불량을 지적했지만, “공사 안할 거냐. 공기 지연은 건설사 책임”이라는 터무니없는 답변이 돌아왔다. A사 관계자는 “주방가구, 붙박이장, 창호, 마루 등 저품질 자재가 LH 현장으로 들어온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수준인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공공 발주 공사에 중소기업이 생산한 자재만 사용하도록 강제한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제도’는 중소기업의 제품 구매 촉진과 판매처 지원을 위해 2007년 도입됐다. 종합 40억원·전문 3억원 이상 규모의 공사를 시행할 때는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지정한 356개 품목 중에서 자재를 골라야 한다.
국내 최대 건축공사 발주기관인 LH(한국토지주택공사)는 중소기업에서 강제로 구매해야 하는 자재품목이 147개에 달한다. 수요 공공기관 중 구매 품목수와 구매량 모두 단연 1위다. 사실상 LH 아파트의 품질 전반을 중소벤처기업부가 통제하고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 보호’란 취지로 중기부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계약 실적도 해마다 급증했다.
지난 2009~2015년까지 연평균 계약 금액이 15조4000억원 수준이었지만, 정부의 구매 강제가 심화되면서 2020년 24조4000억원, 2021년 27조2000억원, 2022년 30조5000억원으로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관급 자재 사용자 절반 이상 ‘불만족’
그렇다면 제도 도입 16년이 지난 현재, 제도의 취지대로 중소기업은 확보된 판로를 기반으로 품질을 제고했을까.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지난달 공사용 직접구매자재 활용경험이 있는 전국 331개 건설현장을 대상으로 2주간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 후, 2016년 조사 결과와 비교했다.
민간 현장에서 사용하는 자재와 비교했을 때 전반적인 만족도를 묻자, 응답 현장의 53.3%(183개)가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2016년과 조사결과를 비교한 공사수행 영향 평가에서는 공정관리와 품질 등 5개 항목 모든 영역에서 부정적 평가가 급증했다.
2016년에 ‘공사품질’ 항목에서 17%에 불과했던 부정적 평가는 올해 조사에서 39.3%로 2배 이상 늘었다. 이어 ‘공기준수 및 단축(78.9%)’과 ‘공정관리(78.5%)’, ‘하자분쟁 시 책임유무 판별(62.2%)’ 측면의 부정적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박희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응답현장의 84.3%가 관급자재로 인한 공사 지연을 경험했는데, 2016년 대비 1.8배 늘어나며 중소기업 제품의 납기 지연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며, “특히 레미콘과 아스팔트콘크리트 등 직접구매 비중이 높은 품목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매우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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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부에 막혀 옴짝달싹 못하는 LH
LH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국정감사 때마다 자재 불량 문제로 질타를 받았기 때문이다. 2021년 국감 당시 하영제 국민의힘 의원실은 LH가 품질이 불량해 제재 통지서까지 발부했던 주방가구 제조사 두 곳과 일주일 후 재계약한 이유를 추궁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LH 측은 “벌점을 부과해도 1년간 3회 이상 품질문제 지적을 받아야 그나마 1년 정도 계약체결이 제한되는 수준”이라며, “최근 6년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이 적발된 110개 중소 레미콘사들도 시정명령만 받은 후 납품을 진행 중이고, 심지어 여전히 담합을 시도해 현장 민원이 빗발쳐도 중기부에 가로막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답했다.
작년 11월 LH는 전북지역에서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품질 불량과 납기 지연이 심각한 주방가구와 신발장 등 8개 품목을 ‘공사용자재 직접구매’ 대상에서 제외해달라는 건의서를 중기부에 보냈지만, 중기부는 ‘직접구매 예외사유 조정협의회’에서 불인정했다는 이유로 8개 품목 모두 중소기업 제품만 받도록 강제했다.
지방중소벤처기업청이 주관하는 해당 협의회는, 발주기관 외에 중소기업중앙회와 조합 관계자, 전문가가 참여하는데 의결권의 최소 과반을 이해 당사자가 차지하고 있어 애초에 ‘예외 인정’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다.
강태경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품질 불량이 적발됐는데도 지속적으로 납품을 허용하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특히 중기부가 통제하는 조정위원회의 예외 협의 일관성이 심각하게 결여돼 있다. 위원회에 해당 자재의 최종 사용자인 국민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시민단체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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