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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정치적 국책사업의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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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7-18 06:20:37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권해석 기자]지난 6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백지화를 선언하자 김해 신공항 사업이 떠올랐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절차가 끝난 사업이 백지화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가장 최근 사례가 김해 신공항 사업이었다. 정치권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밀어붙이면서 당시 기본계획 수립 단계던 김해 신공항이 백지화됐다.

김해 신공항 백지화 과정에서 행정부의 움직임은 신중했다.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같은 당 국회의원 출신인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에게 행정부 차원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강하게 압박했다. 가덕도 신공항 추진 근거가 없던 상황에서 국토부 예산을 돌려 용역에 나서라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친정인 여당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은 국회에서 “절차 없이 국토부에 ‘그냥 이렇게 해’라고 하면 저야 정치인 출신이니 ‘예, 그러겠습니다’ 하겠지만, 공무원들은 못 한다”며 거부했다.

절차를 밟기 전까지는 김해 신공항 건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

이후 국무조정실에서 김해 신공항 건설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냈고, 국회가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몰아붙이면서 김해 신공항 폐지가 기정사실이 된 이후에도 정부의 ‘절차’ 사랑은 계속됐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 논의 중에도 정부는 김해 신공항 중단에 머뭇거렸다.

국회는 정부가 직권으로 김해 신공항 기본계획 마련을 중단하라고 했지만, 국토부는 법에 근거를 담아야 한다고 맞섰다. 결국 법적 근거가 완성된 이후 마련된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가덕도 신공항이 이름을 올렸고, 김해 신공항 사업은 사라졌다.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대한 가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지금도 김해 신공항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 국익 입장에서 낫다는 의견이 있다. 국책사업은 그 자체로 정치 행위이기 때문에 모두를 만족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정부의 노력(?)으로 사업을 실제 추진하는 행정의 절차적 문제는 없다.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노선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대통령 부인인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이 모두 규명되더라도 다양한 의견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절차지만, 이번 서울∼양평 고속도로의 백지화 선언에서는 절차가 보이지 않는다. 백지화를 위한 절차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백지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와 같다.

국토부가 배포한 설명자료를 보면, 백지화의 불가피성을 언급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정부에서는 사업 추진을 중단하였고, 적절한 시기가 도래할 경우 다시 정상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히고 있다. 백지화는 사업의 폐지를 뜻하는데, 정부의 설명은 중단에 가깝다.

백지화 선언은 적어도 행정의 언어는 아닌 셈이다.

국책사업은 정치적이지만 행정은 정치적이면 안 된다. 행정의 공간에 정치의 언어가 들어오면 행정 서비스를 받는 국민들은 헷갈릴 수밖에 없다.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둘러싼 정치적 공방은 불가피하겠으나, 그와는 별개로 행정은 정해진 절차대로 진행돼야 한다.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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