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은 백남준과 더불어 국제 미술시장에서 K-아트의 위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미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회화로 유명하지만 일본과 미국 유럽에선 설치미술가로도 정평이 나 있다. 그의 단색조 미학의 그림은 1970년대 ‘점’ ‘선’ 시리즈로 시작해 1980~1990년대 ‘바람’ 시리즈, 19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조응’ ‘대화’시리즈로 이어진다.
1980~1900년대에 작업한 ‘바람’ 시리즈는 ‘점’과 ‘선’ 시리즈에서 한층 진화된 테마로 여겨진다. 자유롭고 리듬감 있게 표현한 ‘바람’은 단순히 점을 찍고, 선을 긋고 하는 움직임이 아니다. 붓질 자체를 비스듬하게 꺾어 그리거나 대상의 아우라를 살포시 겹쳐 응축했다. 화면에 잘 짜여진 규범적인 구도보다 무의식 중에 떠오른 것을 자동기술적 기법으로 채색했다는 게 미술 평론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런 미학적 특성 때문인지 그의 1984년작 ‘동풍(East Winds)’은 2021년 8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1억원에 낙찰돼 작가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우환의 300호 크기의 또 다른 대작 ‘바람’ 시리즈가 경매에 부쳐진다. 서울옥션이 오는 25일 오후 4시 대구신세계백화점 8층 문화홀에서 실시하는 경매 ’대구 세일‘를 통해서다. 이날 행사에는 이우환 이외도 박수근, 박서보 등 한국미술 거장들의 작품을 비롯해 곽인식, 이배, 마르크 샤갈, 앤디 워홀 등 국내외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출품된다. 출품작은 총 77점, 추정가 총액은 약 72억원이다.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 /사진: 서울옥션 제공 |
이우환의 300호 크기의 대작 ’바람과 함께(With Winds)‘는 1990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붓자국의 표현이 역동적이며, 호흡의 조절과 공간감이 드러나 보인다. 서울옥션 측은 “큰 화면을 가득 채운 물감 터치의 농담이 형성하는 운동감과 율동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국제 미술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거장의 대표작인 만큼 컬렉터들의 뜨거운 입찰경쟁이 예상된다.
이우환의 또 다른 대표작 ’점‘(From Point)’도 새 주인을 찾아 나선다. 1978년에 완성된 이 작품은 반복적으로 점을 찍어 우주의생성과 소멸의 무한성을 은유적으로 시각화 했다. 작품의 추정가는 3억~6억원이다.
서울옥션은 국내외 근현대미술 거장들의 작품들도 줄줄이 입찰대에 올린다.
박수근의 ‘농가’ /사진: 서울옥션 제공 |
‘국민화가’ 박수근의 1961년 작 ‘농가’는 특유의 투박한 마티에르와 토속적이고 한국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희귀작이다. 박수근 예술의 더할나위없이 완결되던 1960년대 작업으로 탄탄한 데생력과 구성력이 돋보인다.
단색화가 박서보의 50호 크기 ‘묘법-No.060612’도 내놓는다. 화면을 청회색으로 밭고랑처럼 시원하게 채색한 게 인상적이다. 2006년에 제작된 이 작품의 추정가는 3억~4억5000만원이다. 작고한 1세대 단색화가 윤형근의 1989년 작품도 추정가 3억3000만~4억5000만원에 경매한다.
서울옥션은 이번 행사에 대구 지역에 연고가 있는 인기 작가들의 작품도 대거 출품했다. 한국 현대미술의 한 획을 그은 곽인식의 작품, ‘숯의 화가’로 잘 알려진 이배의 100호 크기의 드로잉, 김종언의 작품, 변미영의 ‘유산수’, 김창태의 ‘눈길’ 등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경매에 오른다.
해외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원화 위주로 구성했다. 마르크 샤갈의 ‘악사와 염소’, 앤디 워홀의 ‘꽃’ 이 오랜만에 출품돼 눈길을 끈다. 미스터, 아야코 록카쿠, 조엘 메슬러 등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을 받는 작가들의 작품도 새 주인을 찾아 나선다.
출품작들은 오는 20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 5층과 6층에서, 22~25일에는 대구신세계백화점 갤러리 8층에서 만날 수 있다. 프리뷰 전시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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