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예술시장에서 디자인 상품이 미술애호가들의 새로운 아트테크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최근 근현대 건축물은 물론 공예품, 가구, 조명, 보석 등 다채로운 디자인 작품이 미술시장에 점차 편입되면서 급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그림 시장이 조정을 받고 있어 미술품 애호가들의 투자 심리가 디자인 컬렉션으로 옮겨가는 추세를 반영한 결과다.
국제 경매시장에서 작품 가격 역시 지난 10여년 동안 꾸준히 치솟고 있다. 아일랜드 출신 건축가 에일린 그레이의 ‘드래건 의자’는 2009년 2월 크리스티의 이브생로랑 소장품 경매에서 응찰자들의 경합 끝에 추정가보다 무려 10배가 높은 2800만 달러(약 330억 원)에 팔려 디자인 가구 최고가를 기록했다. 호주 출신 디자이너 마크 뉴슨이 알루미늄과 유리섬유로 제작한 ‘등받이 의자’는 2015년 4월 런던 디자인경매에서 240만 파운드(약 35억 원)에 낙찰됐다. 밀 자크 펄먼의 서랍장(61만 달러), 카를로 몰리노의 테이블(60만 달러)도 2013년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고가에 낙찰돼 눈길을 끌었다.
한국 디자인 시장도 아트마켓의 ‘블루오션’으로 뜨고 있다. 디자인 경매가 줄을 잇고, 화랑과 미술관들은 기획전을 늘리고 있어서다. 실제로 불황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미술애호가가 늘지 않는 상황이어서 성장 중인 디자인 시장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옥션은 이같은 시장 흐름을 반영해 이달 26일 온라인 디자인 경매를 열고 ‘아트 틈새시장’ 공략에 나선다. 디자인 거장들의 오리지널 가구를 비롯해 빈티지 오디오, 만년필 등 투자가치를 지닌 총 86점을 경매에 부친다. 낮은 추정가 총액은 약 7억 원이다.
디자인 작품은 그림에 비해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 데다 미술품 양도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 ‘상품’이어서 안목에 따라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컬렉터들의 ‘사자 열기’가 이어질지 주목된다.
서울옥션은 이번 세일행사에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들의 의자, 테이블, 캐비닛 등을 두루 경매에 부친다.
덴마크의 건축가 겸 디자이너 아르네 야콥센의 대표작 ‘백조 의자’를 비롯해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겸 건축가 장 푸르베의 ‘표준 의자’, 승요상의 ‘수도사 의자’ 등을 전략 상품으로 내걸었다.
장 푸르베의 ‘표준 의자’ /사진: 서울옥션 제공 |
출품작 중에는 장 푸르베의 ‘표준 의자’가 단연 눈에 띈다. 4개 세트 의자로 구성된 이 작품은 프루베의 단순하고 합리적인 디자인 철학을 담아낸 수작이다. 추정가는 8000만 원~1억2000만 원이다. 1ㆍ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전쟁으로 인한 난민, 사회적 약자 등 소외받는 사람들과 디자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 작품인 만큼 컬렉터들의 관심이 예상된다.
아르네 야콥센의 백조 의자‘ /사진: 서울옥션 제공 |
‘기능주의의 선구자’로 불리는 야콥센이 제작한 의자도 새 주인을 찾는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두루 갖춘 그의 작품 ‘백조 의자’는 추정가 50만~800만 원이 책정됐다. 백조를 닮은 형태의 간결미가 특징이다.
국내 유명한 디자이너와 건축가들의 작품도 줄줄이 경매에 오른다. 승효상의 ‘수도사 의자’는 그의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을 녹여낸 작품이다. ‘수도원의 가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은 더함 보다는 나눔, 채움보다는 비움을 담아내려는 작가의 치열한 의지가 엿보인다.
강원도 홍천에서 목공소를 하는 이정섭의 디자인가구 ‘CEO의 테이블’은 사무 환경과 잘 어우러지게 제작된 작품이다. 자연주의 목공을 강조하는 이 씨의 생활가구 철학이 흠뻑 묻어있다.
이외도 1950년대 생산된 일본과 독일의 빈티지 라디오를 비롯해 몽블랑의 한정판 만년필, 평면 회화작품 등도 온라인 경매를 통해 소개된다.
이옥경 서울옥션 부회장은 “팬데믹 이후 인테리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빈티지 디자인 가구를 찾는 고객이 더욱 많아졌고 이러한 트렌드는 올해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며 “빈티지 제품은 과거의 추억에 현재의 감성이 더해져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존재하는 만큼, 이번이 많은 고객들에게 섬세함 속에 개인의 취향이 깃든 빈티지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출품작들은 경매 당일인 26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 지하 4층에서 만날 수 있다. 누구나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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