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조성아 기자] 즐거워야 할 축제가 생존게임이 돼버렸다. 2023년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를 찾은 전 세계 청소년들은 지저분한 샤워시설과 화장실, 곰팡이가 핀 달걀 등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벌레에 물려 병원을 오가야 했고, 땡볕 더위에 그늘에서 제대로 쉴 수도 마음껏 생수를 마실 수도 없었다. 인간다운 생활의 기본 요소인 의식주(衣食住), 어느 것 하나 편치 않았다.
폭염에 이어 태풍까지,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았다. 결국 정부와 세계스카우트연맹은 조기 철수를 결정했고, 참가자들은 서울 및 수도권으로 이동했다. 피난이나 다름없었다.
잼버리에 온 청소년 중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알뜰히 모아 참가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수백만원에 달하는 참가비를 마련하기 위해 1년 넘게 쿠키를 만들어 팔고 식당에서 일해온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찾은 한국 잼버리 현장에서 경험한 것은 ‘K-바가지’였다. 일반 매장에 비해 적게는 10%에서 두 배 가까이 비싼 ‘바가지 물가’가 청소년들의 주머니를 털었다. 잼버리 현장 편의점 운영업체인 GS25 측은 특수입지에 따른 물류비용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모든 상품을 시중 가격으로 내리기로 했다”며 뒤늦게 판매가를 조정했다.
해외 잼버리 개최 사례를 배우겠다고 출장간 공무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관광만 하고 돌아왔다. 잼버리에 투입된 사업비 1171억원 중 인건비 등 운영비가 무려 740억원에 달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 김현숙 장관의 위기대응 인식은 총체적 난국의 정점을 찍었다. 김 장관은 잼버리 조기 철수 사태에 대해 “한국의 위기 대응 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 해석을 내리는가 하면, 부산 엑스포 유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우려에 대해선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는 이치에 맞지 않는 대답을 내놨다.
이 정도의 상황 판단 능력을 가진 이가 수만명이 모이는 행사의 주무부처 수장이라니 낯뜨거운 일이다. 여가부는 잼버리 참가자들이 철수한 다음날엔 예고 없이 잼버리 진행상황 브리핑을 취소하기도 했다. 예정됐던 브리핑을 취소하면서도 대변인은 “파악된 것이 없다”는 무책임한 설명만 했다.
정치권에서 사실상 망쳐놓은 잼버리를 위해 나선 건 기업과 민간, 그리고 국민들이었다. 삼성ㆍ현대차ㆍ아모레퍼시픽 등 여러 기업이 구급차와 의료진 등을 지원하고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학교와 종교단체들도 숙소를 제공했다. 잼버리 참가자들을 마주친 국민들은 “미안하다”며 손을 내밀고 사과를 건넸다. 잼버리 현장에서 실망했던 학생들이 부디 한국에서의 나쁜 기억을 조금이라도 덜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잼버리 사태에 대해 “150여개국에서 모인 4만5000명 대원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모두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라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당연한 이 언급이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에선 왜 적용되지 않았던 건가. 잡음으로 얼룩졌던 잼버리가 12일 막을 내린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따지고 책임지고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유종의 미’일 것이다.
조성아 기자 jsa@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