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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서트럭 증차 급한데”…건설노조에 백기 든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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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8-28 05:00:28   폰트크기 변경      
[빗장풀린 건설기계 수급]반쪽 규제 배경과 업계 반응


레미콘 믹서트럭 차주 노조와 결합
건설현장 최대 카르텔로 군림 심각

레미콘 단가 2009년比 43% 오를때
운반비 110%↑…각종 명절 상여금
통신비 등 합치면 인상률 150% 넘어

증차제한에 번호판 암거래도 늘어
수도권기준 가격 최대 7000만원대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국토교통부가 건설노조 카르텔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건설노조의 주력부대 격인 레미콘지회를 무력화하고 무분별한 운송비 상승을 막으려면 콘크리트(레미콘) 믹서트럭 증차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산업계의 주장을 뒤로 한채 또다시 2년간 증차 제한을 결정한 것이다. 대외적으로 밝힌 결정 이유인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공급 초과’는, 같은 공정에 투입되는 콘크리트 펌프카의 증차 결정으로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다.

27일 레미콘ㆍ건설업계는 지난 25일 레미콘 믹서트럭에 대한 증차를 금지한 건설기계 수급조절위원회의 의결 결과를 통보 받고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건설노조를 일컬어 ‘건폭’(건설 폭력배)이라는 과격한 용어까지 써가며 전면전을 예고했던 원희룡 국토부 장관조차 이전 행정부 수장들과 똑같은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2009년부터 건설기계관리법에 의해 차량 신규등록이 제한된 레미콘 믹서트럭은 ‘건설기계 임대시장 안정화’라는 정부 취지와 달리, 차주들의 권한이 세지면서 건설현장의 최대 ‘카르텔’로 군림해왔다.

근로자 신분이 아닌 믹서트럭 차주들은 자체적으로 노조를 만들어 수도권에서는 한국노총, 부산·울산·경남 지역에서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핵심 세력으로 활동해 왔다. 현재 수도권에서는 차주 92%가, 부ㆍ울ㆍ경에서는 98%가 각각 노조에 가입해 있다. 이들은 건설현장을 셧다운(일시 중지)시킬 수 있는 ‘레미콘 공급 중단’ 카드를 수시로 꺼내들며 건설노조의 중심축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증차 제한을 무기로 운송비 인상과 각종 지원금을 노리고 수시로 불법 파업을 주도했다. 실제로 2019년에는 ‘운송비 30%대 인상’을 요구하며 일방적으로 운송을 중단해 66일간 울산 지역 건설현장 전체가 셧다운됐고, 2020년 5월에는 부산·경남 15일, 6월 광주전남지역도 10일간 조업이 중단됐다. 이어 2022년 10월에는 삼표산업 성수공장 철거로 사대문 안 레미콘 수급원이 사라진 점을 노리고 ‘운송비 2배 인상’을 요구하며 조업을 중단하기도 했다. 또 그해 12월에는 화물연대에 동조한다는 이유로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레미콘 운송이 일주일간 중단했다. 올해도 5월과 7월 서울에서 진행된 건설노조 노숙 총파업 때 레미콘 지회가 파업을 주도하기도 했다.

불법 파업의 결과는 레미콘 운반비 급등으로 이어졌다. 2009년 대비 레미콘 단가가 43%(㎥당 5만6200원 → 8만8700원) 오르는 동안 레미콘 운반비는 곱절이 넘는 110%(1회당 3만313원 → 6만9700원)나 상승했다. 단가 인상 외에도 각종 명절 상여금과 타임오프 수당, 통신비·피복비 지원금까지 합치면 실제 인상률은 150%를 훌쩍 넘는다.

대형 레미콘사 임원은 “레미콘 차량들은 대부분 레미콘사에 등록한 후 회사와 개별 협상을 해왔는데, 국토부가 증차를 막은 후 건설노조가 믹서트럭 차주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건설노조는 회사 내 차주 상조회를 통째로 가입시키는 방식으로 노조원 수를 급격히 늘렸다”며, “90분 내에 이동해야 하는 레미콘의 특성상 해당 지역 차주의 9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하면 건설현장 운영권이 사실상 레미콘 노조에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임원은 “결국 국토부의 증차 제한이 지금의 건설노조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국토부의 증차 제한은 ‘번호판 암거래’ 시장도 키웠다. 믹서트럭 총량 제한으로 기존 사용자가 번호판을 반납해야만 신규 운송사업자 진입이 가능하다 보니 영업용 번호판이 시장에서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번호판 가격은 수도권 기준 약 4500만원이고, 여기에 권리금 형식의 상조회비까지 합치면 최대 7000만원을 내고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기형적 구조가 됐다.

4년 경력의 수도권 믹서트럭 기사 A씨는 “증차가 안되니까 시장 진입에만 차량값 제외하고 7000만∼8000만원이 들어가는데 그래도 정년 없이 주 40시간만 일해서 연 1억원 이상 안정적으로 버니까 투자 가치가 있는 셈”이라며, “이번 국토부 결정을 보니 노조 활동이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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