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금융지주 최고경영자(CEO) 세대교체 시즌이다. 신임 금융지주 회장에게 가장 큰 리스크를 꼽으라면 소위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일 것이다.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면 CEO의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펀드 불완전판매나 임직원 횡령처럼 도덕적해이가 분명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꼬리 자르기’로 빠져나가기는 어렵게 된다.
은행권은 요지경이다. 작년엔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직원이 700억원대 횡령사고를 일으켰다. 올해는 BNK경남은행 간부급 직원이 15년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상환자금 1000억원을 돌려막기로 횡령ㆍ유용한 혐의가 드러났다. DGB대구은행에선 직원들이 고객 몰래 문서를 위조해 1000여 개의 계좌를 개설한 사실이 적발됐다. 롯데카드는 직원 2명이 100억원이 넘는 돈을 배임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금융사고는 단순한 개인 일탈로 치부할 수 없는 내부통제의 명백한 실패다. 개인 횡령에 대한 철저한 범죄수익 환수는 기본이고, 임직원의 내부통제 기준 준수 여부를 관리ㆍ감독할 책임을 CEO에게 부과해야 할 것이다. CEO는 책임지는 자리다. 내부통제 실패 시 CEO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금융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정부는 최대한 서둘러 연내 지배구조법을 통과시킨단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배구조법 개정안이 올 하반기 국회 상정돼 바로 통과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의 의지와 달리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개정은 지지부진하다. 여야 갈등으로 국회 정무위원회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개정안 자체도 완화됐다. 금융당국은 당초 중대 금융사고 발생 시 CEO에게 ‘해임ㆍ직무정지’ 같은 중징계를 내리겠다던 방침에서 한발 물러섰다. 대신 기준이 모호한 ‘시스템적 실패’에 대해서만 CEO에게 책임을 묻는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법안이 입법예고가 되더라도 반쪽자리 법안에 머물 뿐 실효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끊이지 않는 금융사고를 방지하려면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자인 금융회사 대표이사에게 면죄부를 줘선 안된다.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CEO의 직무를 박탈하고, 해당 금융회사에 대한 금전적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덧붙여 금융회사를 관리ㆍ감독하는 금융당국 역시 감독을 소홀히 한 부분에 대해 일부 책임을 묻는 조항이 들어가야 한다. 금융감독원은 정기ㆍ수시 검사를 하면서도 횡령을 초기에 적발하지 못했다.
은행이 신뢰를 잃으면 금융산업의 근간은 무너지고 만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는 건전한 경영과 소비자 보호를 위한 핵심 인프라다. 횡령ㆍ돈세탁 방지 등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한다면 ‘글로벌 선진금융’은 헛구호에 그치게 된다. 은행 경영진은 횡령사고를 막기 위한 내부통제 시스템 확립에 직을 걸어야 한다. 횡령사고를 사전에 차단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과 권한 부여는 결국 CEO의 몫이다.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