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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순살 아파트’와 시스템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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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12 04:00:14   폰트크기 변경      

명의(名醫)는 진단을 잘 하는 사람이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 문진과 촉진은 물론이고 각종 검사결과를 참고한다. CT와 MRI 같은 진단기기를 활용하기도 하고, 여러 과가 협진도 한다. 진단이 정확해야만 효과적인 처방이 가능하고, 올바른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천검단 지하주차장 사고로 촉발된 부실공사 문제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인 데다 공기업 LH가 발주하고 대기업 GS건설이 시공한 현장에서 발생한 것이기에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크다. 언론은 앞다투어 비난과 질타를 쏟아내고 있고, 정부도 엄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고이고 국민의 불안을 야기한 책임이 막중하기에 응당 잘못에 상응하는 벌을 받고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고가 발생하게 된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 필요한 개선방안을 강구함으로써 다시는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원인이 제대로 진단되고 올바른 처방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리사회는 어떤 문제가 터지면 냉정하게 본질을 살피고 원인을 파악해서 개선을 해 나가기보다 질타하고 비난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선정적인 언론보도가 이어지면서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기 일쑤이고,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선 ‘순살 아파트’라는 조어 자체가 섬뜩하다. 철근을 통째로 빼먹어서 곧 무너질 것 같은 부실아파트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인천검단 사고가 안전의 우려가 큰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1년에 수십만 채씩 지어지는 아파트가 다 부실시공이 되었거나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며, 지하주차장이 아닌 건물 본체에서 문제가 생긴 바도 없다. 여론이 비등하니까 입을 닫고 있지만 안전이 우려될 정도로 부실이 심각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문제가 된 단지도 일부 철근이 누락된 상태로 보강공사를 통해 충분히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럼에도 ‘순살 아파트’라는 조어는 국민의 불안을 과도하게 가중시키고, 철근까지 빼돌리는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LH 출신 전관에 대한 질타도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 전관예우의 관행이 공정한 경쟁질서라는 측면에서 비난받을 소지는 있지만, 그것이 부실을 초래한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도로, 철도, 댐과 항만 등 각 분야의 공기업 퇴직기술인들이 재취업해서 활동해온 것은 오래전부터 일이며, 기술과 경험의 전수라는 측면에서 기여한 점도 많았던 상황에서 유독 LH 출신들만이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건설은 여러 분야의 다양한 공종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이루어지는 거대한 시스템 산업이다. 사업계획에서부터 설계와 시공, 감리와 자재까지 여러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고, 수많은 기술자와 기능인들이 일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여러 건설 관련 제도와 법규에 의해서, 각 단계별 점검과정을 통해서 안전이 확보되도록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부실이 발생했다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 중 일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도 건설산업시스템 전반에 대한 진단으로부터 시작돼야 하며, 노정된 문제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

논란이 되었던 구조설계의 개선방안이 마련돼야 하고, 시공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감리·감독을 강화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 건물안전의 핵심이 되는 철근콘크리트 공종의 문제점이 중점 검토돼야 하며, 레미콘의 품질과 강도의 문제, 이를 뒷받침할 양질의 골재확보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돼야 한다. 중장기적으로는 젊은 세대들의 건설산업 기피에 따른 기술인력의 부족문제와 인구감소에 따른 건설인력의 확보문제가 미리 깊이 있게 궁구돼야 한다.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준 인천검단 사고와 지하주차장 부실시공 문제가 LH에 대한 비난과 질타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GS건설 정도의 대기업 현장에서 부실이 발생하게 된 사유를 면밀히 분석해서 건설산업시스템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의 분노와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 방책이 아닌 근본적인 혁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 형 주 (사)건설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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