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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로 읽는 현대사](30)경부고속도로⑨7자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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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08 04:00:20   폰트크기 변경      

1970년 7월7일 개통식

공사과정에서 77명 목숨잃어

1993년 확장공사 개통도 7월7일

총 429억원 투입-순공사비 384억원

용지비 20억 조사ㆍ설계비 25억

충북 옥천군 금강교 앞언덕에 세워진 순직위령탑. 박정희 대통령은 7월7일 개통일 대구로 가는 길에 들러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  국가기록원

 경부고속도로는 7자와 인연이 깊다. 1970년 6월 말 완공됐는데 개통식은 일주일 뒤인 7월7일로 택일됐다. 고속도로 건설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이도 77명이다. 같은 해 12월에 제막식을 가진 추풍령휴게소의 준공기념탑은 기단부에서 탑신의 정상까지 77단으로 축조됐고 휴게소광장에서 탑신까지 이어진 보도계단도 77단으로 만들어졌다. 정부는 1992년 도로의 날을 제정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개통일인 7월7일을 도로의 날로 정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추후 모임을 결성했는데 모임의 이름을 77회로 지었다. 7자의 인연은 확장공사까지 이어졌다. 1990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수원∼청원간 100.1㎞의 확장공사는 1993년 7월7일 개통됐다.

1970년 6월27일 이한림 건설부장관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이 장관은 기자들에게 “이날로 경부고속도로의 전공정을 완성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30일 개통식을 가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개통식 일정은 지켜지지 않았다. 건설부는 개통식을 7월 초로 연기했고 집중호우로 인한 도로 파손으로 개통식을 또다시 연기했다. 이렇게 해서 경부고속도로 개통식은 7월7일 열리게 됐다.

개통식날 오전 9시30분 대전인터체인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 완공구간인 대전∼대구간 개통테이프를 끊으면서 서울∼부산간 428㎞의 고속도로가 완전히 열렸다. 박 대통령은 테이프 커팅에 이어 각료 전원과 입법ㆍ사법부 요인, 경제계 인사 등 700여명의 축하객들과 함께 대구까지 152㎞ 시범주행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시범주행 중 충북 옥천군 동이면 금강교 앞언덕에 세워진 고속도로 순직자 77명의 위령탑 제막식을 가졌다.

11시50분 대구인터체인지에 도착한 박 대통령은 준공식장인 대구공설운동장으로 향했다. 박 대통령은 10만명이 넘게 운집한 군중 앞에 섰다. “처음 고속도로를 시작할 때 국내에서는 우리 재정, 우리 기술로는 무모하고 불가능한 공사라는 등 여러 비판이 있었습니다. 과거의 상식으로는 무모하고 불가능했을지 모르나 우리는 결국 공무원, 건설업자, 기술자, 노무자들의 심혈과 정열을, 그리고 모든 기술을 다 쏟아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이 고속도로를 시작할 땐 산업근대화를 통한 경제발전 등 경제적, 물질적 목적보다 더 중요한 목적을 설정했습니다. 우리 국민들이 과연 얼마만한 저력, 에너지, 기술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민족의 능력을 이 고속도로 건설을 통해 테스트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1970년 7월7일 준공을 기뻐하는 국민들이 경부고속도로에 나와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2년5개월여 만에 마무리됐다. 착공된지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21일 서울∼수원간 31.3㎞가 개통됐고 수원∼오산간 14.2㎞도 같은 해 12월30일 준공됐다. 오산∼천안간 38.1㎞는 1969년 9월29일에, 천안∼대전간 68.8㎞는 그해 12월10일에, 대구∼부산간 122.8㎞는 12월29일에 각각 개통됐다. 마지막으로 최대 난공사 구간이었던 대전∼대구간 152.8㎞는 1970년 7월7일 개통 테이프를 끊었다.

계획 당시 33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됐던 사업비는 결국 429억7300만원으로 정산됐다. 이 중 순공사비는 384억5600만원이었고 용지비는 20억100만원, 조사 및 설계비를 포함한 기타 부대비용이 25억1600만원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총 428㎞이니 1㎞당 평균 1억40만원의 사업비가 들어간 셈이다. 이는 당시 건설 중이던 일본 도메이고속도로(6차선)의 1㎞당 사업비 8억원의 8분의 1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4차선 고속도로 건설비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규모였다. IBRD의 한 보고서는 경부고속도로는 선진국의 4차선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5분의 1을 투자해 건설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건설기간 또한 가장 짧았으며 조사와 설계부터 시작해 시공을 거쳐 준공까지 모든 과정을 우리 기술진의 손으로 이룩해 냈다. 연인원 892만8000명의 인력이 동원됐고 시멘트 680만포대와 아스팔트 47만3000드럼, 철근 4만9900톤, 강재 1만900톤 등의 자재가 들어갔다. 연동 장비 165만대가 투입됐고 건설도중 77명이 목숨을 잃었다.

충북 옥천군 금강교 앞언덕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건설부는 이은상 시인과 김충현 서예가에게 특별히 부탁해 비문을 새겨 넣었다. 지금은 당초 위치보다 북쪽으로 5m가량 옮겨진 금강휴게소 북측 동산에 위치해 있다. 2000년대초 금강2교부터 금강3, 4교를 거쳐 당재육교 당재터널을 지나 묘금 정류장까지 11.5㎞에 대한 선형 개량공사가 진행되면서다. 이곳에서는 매년 7월7일 위령제가 거행된다.

경부고속도로는 전구간 개통전부터 부실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1970년 4월2일 정부는 대규모 토목공사를 해온 건설업자 가운데 부실공사로 물의를 일으키는 업자들에 대해 앞으로 공사도급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개통돼 운행 중인 경부고속도로 구간에서 파손이 잇따르면서 언론으로부터 부실공사라는 비판이 쏟아진 데 따른 것이었다. 이때 건설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대전간과 대구∼부산간 총 283㎞에서 1522개소의 도로파손이 나타난 것으로 조사됐다.

전구간 개통 후에도 부실문제는 끊이지 않았다. 개통 한달이 지날 때쯤 크고 작은 각종 하자가 500여건이나 발생해 차량주행에 불편을 주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주로 새로 개통된 대전∼대구간과 대구∼부산간이 심하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하자발생이 공기가 짧아 겨울에도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으며 공사비가 저렴해 업자 측의 적극적인 협조가 결여됐고 기술면에서 새로운 시련에 많이 봉착해 원숙한 처리를 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실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던 인사들은 언론보도에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당시 감독관을 지낸 최광규씨는 2011년 월간 국토와교통이 연재한 ‘경부고속도로 건설 뒷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했다.

‘‘부실공사, 누더기 보수’ 등 창피스런 기사가 신문 등 매스컴에 보도됐으나 정작 우리들은 별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고속도로를 어떻게 하면 값싸게 설계할까 하고 연구하다가, 당시 기술적으로 잘 몰라 포장 두께를 얇게 설계했고, 또한 다짐이 잘 되도록 쇄석 골재 생산시에 흙 성분을 많이 섞은 게 그 원인이라고 말들은 했지만 우리 신출내기 감독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게 우리나라 최초로 있던 일이다 보니 생긴 하자일 뿐이었다. 규정에 있는 대로 다짐을 철저히 시켰는데도 하자가 발생한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휴게소로 1971년 개장한 추풍령휴게소. 멀리 보이는 탑이 완공 기념탑이다.                                  사진   한국도로공사


정부는 경부고속도로 완공을 기념하기 위해 추풍령휴게소에 기념탑을 세우고 개통 4개월이 지난 12월8일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이한림 건설부장관 등이 참석했다. 기념탑에는 ‘서울부산간고속도로는 조국 근대화의 길이며 국토통일의 길이다’라는 박 대통령의 준공기념 휘호가 새겨졌다.<참고 한국건설통사 한국도로공사 30년사 월간 국토와교통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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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
권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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