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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보고 느끼고 읽는 ‘숲속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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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09-25 06:00:31   폰트크기 변경      
[Enjoy Life] 목재파쇄장ㆍ경계초소가 책방으로 변신

숲 속에서 독서와 힐링
느린 트렉킹 코스 쉬어가는 곳


인왕산 초소책방


[대한경제=김정석 기자] ‘정숙!’. 도서관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었다. 작은 소리 하나도 크게 들리고 책장 넘기는 소리만 허용되는 곳. 때로는 칸막이로 나만의 영역을 선으로 그어 집중할 수 있는 공간. 이제는 좀 다르다. 발을 쭉 뻗고 앉거나 눕고, 엎드리고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도서관은 창을 크게 열었고 야외에도 자리를 마련했다. 우거진 녹음 밑에서 햇볕과 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이 더디게 가고 가을이 왔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책읽기 좋은 선선한 날씨와 높아진 하늘, 지는 낙엽과 같은 사색의 이미지 때문일까. 가을을 온전히 느끼는 독서가 가능한 곳. 숲속 도서관을 찾아보자.


오동숲속도서관 / 사진 : 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지난 2019년부터 ‘공원 내 책쉼터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원이나 숲속에 책과 함께 쉴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있는데 오는 2026년까지 20곳을 조성하는 게 목표다. 이미 서울시 곳곳에서 숲속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숲을 품은 도서관’이면서 ‘숲이 품은 도서관’이다.

오동숲속도서관이 대표적이다. 올해 5월에 오동근린공원에 1층, 연면적 428㎡ 규모로 문을 열었다.

예전에는 시끄러운 소음을 내던 목재파쇄장이었는데 가동을 멈춘 후 방치돼 있었다. 장윤규 성북구 마을건축가가 월곡산 자락길을 형상화한 모습으로 설계했다. 산에 있는 도서관과 걸맞게 친환경 목재로 지어졌다. 독서 공간과 북 카페를 갖추고 있으며 주변에 무장애숲길, 유아숲체험원, 치유의 숲길 등도 조성돼있다.


오동숲속도서관


강서구 화곡동 봉제산근린공원에는 봉제산책쉼터가 있다. 쉼터가 소장하고 있는 책 가운데 70% 이상은 환경, 식물 등 생태 관련 도서다. 생태와 환경을 중시하는 이곳의 모토가 반영된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자연과 어울리는 나무색 색감과 디자인으로 내ㆍ외부를 꾸몄다. 공원, 놀이터를 연계한 설계도 눈에 띈다.

창밖에는 봉제산 녹음이 펼쳐지는데 책 속 작은 글자로 피로해진 눈을 푸르른 풍경으로 달랠 수 있다.

봉제산책쉼터는 올해 4월에 문을 열었다. 2층, 477㎡ 규모로 다양한 연령층 이용자를 고려한 열람실, 동아리실, 휴게데크 등이 설치됐다.

유아숲놀이터, 자연체험학습원 등 생태 자원을 활용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아이는 놀이교사와 함께 프로그램을 체험하고 그 사이 엄마, 아빠는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다.


봉제산책쉼터


아차산숲속도서관은 광진구의 일곱번째 공공도서관이다. 작년 10월 광장동 아차산 생태공원 옆에 문을 열었다.

한쪽 면이 전면 유리인데 이를 통해 아차산어울림정원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밖으로 나가면 숲속에서 쉬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야외 책 쉼터도 만날 수 있다. 자연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다. 야외에서의 독서는 또 다른 느낌이다.

연면적 388.92㎡의 2층 도서관으로 1층 자료실에는 일반ㆍ아동도서 약 5000여 권이 있고, 2층에서는 신문과 잡지들을 볼 수 있다. 열람석은 총 60석이다.

방문객들은 도서관 내 스마트 탭이나 개인 스마트폰을 통해 광진구립도서관 전자책(오디오북)과 국외 전자책, 인문학 강의나 전자잡지 등도 읽을 수 있다.


아차산숲속도서관


인왕산에도 도서관이 있다, 인왕산 초소책방이다.

‘초소’라는 단어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어떤 한자인지 궁금했는데 ‘경계초소’라고 할 때 그 초소란다.

1968년 김신조 사건 이후 청와대 주변 경계를 강화하면서 만든 초소였는데 2018년 인왕산이 개방되면서 기능을 잃었다. 철거를 앞두고 있다가 책방으로 리모델링해 지난 2020년 11월 문을 열었다.

인왕산 중턱에 있어 사방이 숲과 나무, 바위다. 과거 초소였다는 점이 지금 이곳을 명소로 만들었다. 초소는 경계를 잘할 수 있는 곳, 주변이 잘 보이는 곳에 만든다. 다르게 말해 이곳에서 보는 풍경이 빼어나다. 감시하던 눈길은 감상하는 눈길로 바뀌었다. 남산타워와 서울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풍경이 걸작이다.

다만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로 북적인다. 조용한 책방의 이미지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책방에 있는 베이커리가 맛집이다.


인왕산 초소책방


이외에도 배봉산숲속도서관, 양원숲속도서관, 삼청공원숲속도서관, 청운문학도서관, 성동구립숲속도서관, 방배숲환경도서관 등 숲과 책이 어우러진 도서관들이 인기다.


숲속 도서관의 또 다른 장점은 올라가는 길이다. 요새 지자체마다 이런저런 걷는 길들을 잘 만들어놔서 도서관으로 가는 ‘쉬엄쉬엄’ 간단한 트렉킹도 즐길 수 있다.


인왕산 초소책방


스마트폰과 영상이 책을 대신한지 오래다. AI가 고도화되면서 쓴다는 일은 이제 인간만의 영역도 아니다. 작가의 엄숙한 글이 아니라 블로거의 가볍고 발랄한 글들이 넘친다. SNS를 통해 모두가 작가다. 쓰는 주체와 쓰는 매체, 쓰는 필체까지 모두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글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누군가는 쓰고 누군가는 읽는다.

기자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직업병’을 하나 얻었다. 차분하게 읽지 못하게 됐다. 서평이나 결론부터 읽거나 훑어본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빨리 뽑아서 전해야 한다. ‘독서’라기 보다는 ‘파악’이다.

올가을에는 천천히 걸어 올라가 보려 한다. 자리를 잡고, 보고, 맡고, 읽어야겠다. 무슨 책을 읽을지는 아직 고르지 못했다.


오동숲속도서관


글=김정석 기자 jskim@ㆍ사진=서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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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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