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백경민 기자] 건설엔지니어링시장도 공정의 가치가 무너져 내렸다.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는 물론, 안전진단 분야 SOQ(기술인평가서)까지도 전관 영입과 로비에 의해 휘둘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종심제는 80%를 차지하는 기술평가 점수에 총점차등이 적용돼 0.01점만 앞서도 입찰가격에 상관 없이 사업권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러다 보니 정성적 평가항목의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전관의 힘을 빌리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술력 경쟁은 뒷전이다. 수억원대 연봉은 기본, 차량과 별도 활동비 등을 지급하면서까지 전관 영입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종심제 사업이 발주되면 각 사 전관들이 모여 공구별 가져갈 물량을 배분하는 작업에 들어간다는 말까지 나온다.
업계는 수차례 걸쳐 정부를 대상으로 연대 탄원에 나설 만큼 종심제에 따른 입찰 폐단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전관이 없는 업체는 사실상 종심제 수주가 불가하다는 불문률이 생기면서다. 실제 업계가 분석한 상위권 업체들의 지난해 종심제 수주율(국토부 지방국토청, 도로공사, 철도공단, LH 기준)은 무려 98%였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당초 취지와 달리 기술력을 요하지 않는 사업에도 종심제가 적용되고 있다”며 “지난해부터 줄곧 종심제 발주 대상 축소 차원에서 기준금액을 높이고, 전문분야별 난이도를 적용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고 말했다.
한 건설엔지니어링사 대표는 “업계에서는 수주와 전관의 긴밀한 관계를 관통하는 부작용을 뻔히 알면서도 찍혀서 눈 밖에 날까봐 전관이라고 말은 못하고 종심제 폐지나 대상을 대폭 줄여달라고 탄원을 한 것인데, 관계부처인 기획재정부나 국토교통부는 마이동풍”이라고 꼬집었다.
안전진단 분야 SOQ 시장도 공정성 시비가 끊이질 않고 있다. 종심제와 마찬가지로 정성평가 요소가 수주의 당락을 가르면서 갈수록 전관업체의 몫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세한 업체가 주를 이루는 상황에 상대적으로 영업력이 뒷받침되는 종합엔지니어링사에 밀려 사실상 하도급 업체로 종속됐다는 회의적인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관련 SOQ 물량은 지난 2020년 440억원 수준에서 올해 2배 이상 급증했다. 지난 5월 기준 1000억원에 육박한 가운데, 하반기 비슷한 발주 규모를 유지한다면 전년(709억원) 대비 3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한 안전진단 업체 대표는 “안전진단 분야는 시설물안전법에 규정된 세부지침에 따라 정형화된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만큼 기술평가가 필요 없는 업역으로, SOQ 방식으로 발주될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백경민 기자 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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