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백경민 기자] 건설산업 입찰제도는 기술 중심의 평가로 포장만 돼 있을 뿐 ‘가격’과 ‘영업’의 굴레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적격심사와 종합심사낙찰제(이하 종심제)는 사실상 수요자(발주기관)가 정한 공사비를 두고 낙찰률 80% 내외 선에서 운에 기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공책임형 CM(건설사업관리)과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는 낙찰률 99%에 육박하지만, 추정공사비 책정 기준 및 시기 등을 감안하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한 데다, 그마저도 예산 절감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SOC(사회기반시설) 예산 확대를 필두로 낙찰률 상향 및 물가변동분 반영 등 시장의 요구는 국내 입찰제도 상 적정 공사비 확보를 위한 최선의 방책인 셈이다.
결국 가격이 결정되는 매커니즘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입찰제도의 체질 개선에는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태경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제는 수요자가 가격을 통제하고 낙찰률을 정해주는 게 아니라, 공급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구조를 고려해 볼 만 하다”며 “현 국가계약 시스템에서는 굉장히 어려울 수 있지만, 공급자가 공사비 상한(GMPㆍGuaranteed Maximum Price)을 보증하고 초과이익과 리스크를 공유하는 식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술형입찰과 건설엔지니어링 종합심사낙찰제 등은 정성평가에 매몰돼 기술력 강화는커녕 전관 영입과 로비 등에 치중하는 실정이다.
시장에서는 그간 발주기관에서 직접 평가해야 하는지, 외부 전문가를 둬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았다. 물론 어떤 방식을 취하든 전관 영입과 로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국토교통부 한 관계자는 공식석상에서 “정성적인 평가 요소가 들어가는 순간 공정성 시비는 양날의 검처럼 따라 붙는다”라며 “지난 몇 십년간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발주기관의 평가권을 완전히 박탈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외부 전문가를 두더라도 그 풀(POOL)은 발주기관의 테두리 안에서 구성되기 때문에 발주기관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LH의 경우 외부 전문가를 중심으로 평가위원을 구성하지만, 똑같은 사람이 1년에 몇 번씩 돌아가고, 그 사람 점수를 보면 의심이 들 정도로 일관된다”며 “전문성을 갖춘 별도의 기관이나 기구를 만들어 평가를 전담케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른 관계자는 “싱가포르 수처리 사업에는 PM(통합사업관리)을 맡고 있는 회사가 직접 시공사를 평가한 사례도 있다”며 “국내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관계된 사업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제대로 평가해야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경민 기자 wi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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