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옥션이 20일 실시한 가을경매에 추정가 14억~16억 원에 출품된 카우스의 ‘동반자’. /사진: 케이옥션 제공 |
1989년 방영을 시작한 ‘심슨 가족’은 30년 동안 전 세계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온 최장수 애니메이션 시트콤이다. 미국 중산층 가족의 일상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위트 있게 풀어내는 이야기로 세계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미국 팝아티스트 카우스(KAWS, 본명 브라이언 도널리)는 이런 ‘심슨 가족’을 거대한 회화 작품 ‘킴슨 앨범’으로 재탄생시켰다. 1m가 넘는 이 그림은 2019년 4월 홍콩 소더비경매에서 추정가의 15배를 뛰어넘는 1억1696만 홍콩달러(약 169억원)에 낙찰되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무엇보다 그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역시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 등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으스스한 해골과 검은색 ‘X’ 모양의 눈을 부각시킨 조각 ‘동반자(Companion)’는 2018년 서울 잠실 석촌호수에 전시돼 385만 명의 관람객을 불러모았다. 대중들에게 친근한 만화적 요소를 적극 작품에 차용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킨 현대미술의 성공사례로 꼽힌다.
최근 글로벌 미술계에서 가장 핫한 작가로 떠오른 카우스의 대형 조각이 국내 경매시장에도 등장했다. 케이옥션이 2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전시장에서 치르는 가을 경매에는 카우스의 대형 조각을 비롯해 미국 화가 조지 콘도와 팝아트 조각가 로버트 인디애나, , 프랑스의 프랑수아 모렐레, 일본의 아야코 록카쿠, 물방울 작가 김창열,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 등 국내외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은 미술가 작품과 희귀 문화재 등 총 102점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전체 출품작의 추정가는 83억원에 달한다. 경기침체 속에 다소 조정받고 있는 미술시장에서 케이옥션의 낙찰률이 80%를 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카우스의 2011년 작 대형 조각 ‘동반자’. 무려 2.5m에 달하는 크기의 작품으로 오른 쪽 눈을 X자로 묘사해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제2의 자아와 같은 존재를 은유했다. 흑인의 왼쪽 배 속 내장을 현란한 색채로 아기자기하게 재구성했지만 을씨년스럽고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추정가는 14억~16원으로 이번 경매의 최고가 낙찰에 도전한다.
손이천 홍보이사는 “시장에서 검증된 작가 작품인 데다 미술 경기 회복 후 작품값이 오르고 환금성도 좋아질 수 있다는 점에서 입찰에 도전해볼 만하다”며 “큰 건물이나 공간을 가진 컬렉터에게 매우 매력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 /사진: 케이옥션 제공 |
김소월이 생전에 간행한 유일한 시집 <진달래꽃> 초판본도 경매에 부쳐진다. 1925년 12월 26일 매문사(賣文社)에서 출간한 이 시집에는 그의 대표작 ‘산유화’, ‘초혼’, ‘못 잊어’, ‘먼 후일’, ‘엄마야 누나야’ 등 주옥 같은 시 127편이 실려 있다. 추정가는 1억 원에서 2억 원이다.
케이옥션 관계자는 “출판 당시 ‘한성도서주식회사’와 ‘중앙서림’ 두 가지 판본이 제작되었는데, 이번 경매 출품작은 ‘중앙서림’ 판본”이라며 “한성도서주식회사 판본은 표지에 꽃을 그려넣었지만, 중앙서림 판본은 표지에 이미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진달래꽃> 초판본은 집필할 당시 시인의 고유 맞춤법과 표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문학사적 가치가 높다는 게 문학계의 시각이다. 더욱이 김소월의 표기법은 정식 맞춤법이 아닌 자신만의 표현으로 시상(時相)을 드러내는 것으로도 유명하기에 2011년 2월 25일에는 출품작과 같은 중앙서림 판본 1점과 한성도서주식회사 판본 3점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해외 유명미술가들의 고가 작품들도 줄줄이 새주인을 찾는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조지 콘도의 ‘도착’(The Arrival)은 추정가 6억8000만~8억5000만 원에 나와 있고, 프랑스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 프랑수아 모렐레의 ‘파이(π) 스트립-티싱1=45º P’ (1억~1억7000만 원), 미국의 팝아트 조각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HOPE’(2억~3억5000만 원), ‘아프리카의 바스키아’로 불리는 아부디아의 ‘무제’(9000만~2억8000만 원), 아야코 록카쿠의 ‘무제’(9억5000만~12억5000만 원) 등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입찰대에 오른다.
이건용의 ‘바디 스케이프’ /사진: 케이옥션 제공 |
1970년대 행위예술의 선두주자 이건용의 신체 드로잉(Bodyscape) 작품도 총 4점이 출동한다. 작가가 캔버스 앞에 뒤돌아서서 보지 않고 팔을 뻗어 그리거나, 캔버스 뒤에서 앞으로 팔을 넘겨 손이 움직이는 대로 화폭을 채워 나간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국내 근현대 작품으로는 김창열의 1974년 작 ‘물방울’(2~3억 원)과 1979년 작 ‘아홉방울’(8800만~1억2000만 원), 윤형근의 ‘Work’ (4000만~1억 원),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 (4억9000만~6억5000만 원), 박서보의 ‘묘법 No. 940302’(1억8000만~3억 원), 하종현의 ‘접합 19-15’ (2억5000만~3억2000만 원) 등이 애호가의 ‘찜’을 기다리고 있다. 출품작들은 20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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