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을 먹고 안부를 묻고 하지 말아야 할 질문들을 빼면 금세 대화 소재가 떨어진다. 그럴 땐 고스톱이 등장한다. 이도 아니라면 결국 TV다. 그런데 매체와 콘텐츠가 다양해지면서 오히려 온 가족의 취향을 만족시킬 프로그램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거실에서는 TV를 보고, 방마다 스마트폰을 들고 뿔뿔이 흩어진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추석에는 온 가족이 함께할 공통분모가 있었다. 바로 아시안게임이다.
9월23일 시작한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사실 인기가 없었다. 개막식을 봤다는 사람도 드물고 심지어 아시안게임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도 주변에 많다. 그런 와중에 슬슬 ‘금메달이에요∼. 금메달!’이라며 흥분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아시안게임 중계화면 앞으로 모이게 한 것은 수영이었다.
한국은 이번 대회 수영 경영에서 무려 22개(금 6ㆍ은 6ㆍ동 10)의 메달을 목에 걸었다. 주최국 중국의 58개(금 28ㆍ은 21ㆍ동 9)와는 여전히 큰 차이를 보였지만, 일본과는 대등한 수준이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은 수영에서 메달 30개를 수확하면서 전체 메달 수에서는 한국에 앞섰다. 그러나 금메달에서는 한국보다 하나 적은 5개에 그쳤다. 한국이 아시안게임 수영 경영에서 일본보다 많은 금메달을 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수영에서 한국은 늘 중국과 일본 다음이라는 공식이 깨졌고, 한국 수영의 ‘르네상스’라는 수식어까지 등장했다. 무엇보다 과거 마린보이 박태환의 원맨쇼에서 벗어나 다양한 선수, 다양한 종목에서 고루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저변이 확대되고 기반이 단단해진 것이다.
선수들의 모습도 과거와 달라졌다. 수영은 물론 다른 종목들에서도 우리 국가대표들은 매우 밝다. 앳된 표정 속에도 노련함이 묻어나고 발랄하면서도 집중한다. 땀투성이 경기 중에도 ‘손하트’와 미소를 잊지 않는다.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다.
이런 선수들이 어디에서 나타났나 생각하자니 시청 중인 중계방송 해설자로 등장한 박태환에게 눈길이 간다. 그는 우리도 수영에서 ‘할 수 있다’라고 증명한 ‘수퍼스타’다. 그를 보며 수영을 시작한 박태환 키즈가 이번 아시안 게임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LPGA에서 한국 여자골프가 강세를 이어가는 이유 역시 박세리 키즈의 활약 덕분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는 김연아 키즈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월드컵 4강 신화는 어린 축구선수들의 꿈을 프리미어 리거로 끌어올렸다. 선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꿈이란 ‘∼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바람에서 시작한다. 자신의 성공이 누군가의 성공을 인도하는 빛이기 때문에 스타라고 불리는 걸까. 불모지에서도 ‘할 수 있다’라는 걸 증명한 스타가 있기에 꿈은 계속된다.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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