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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주로 칼럼] 디폴트옵션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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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1-12 17:16:05   폰트크기 변경      

[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연말이 다가오면 직장인들은 연말정산 숙제에 돌입한다. 이때 ‘13월의 세금’을 피하려는 근로소득자들은 절세를 위해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 7월부터 ‘사전지정운영제도(디폴트옵션)’가 전면 시행되면서, IRP가입자들은 거래하는 은행·증권사 등에서 ‘디폴트옵션을 설정하라’는 문자폭탄을 받았다.

디폴트옵션은 퇴직연금 가입자의 원리금 보장상품 만기 시 별도의 상품 운용지시가 없는 경우, 가입자가 사전에 정한 방법으로 퇴직연금 자산을 자동 운용하는 제도다. 디폴트옵션에 대한 가입자의 별도 운용 지시 없이 6주가 지나면 자동으로 ‘디폴트옵션’이 적용된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퇴직연금’이 퇴직금제도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불완전한 제도라는 반증일 수도 있다.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내 퇴직연금을 어떤 형태로 운영 중인지 정확히 아는 직장인은 별로 없다. 퇴직연금이 복잡한데다 수익률까지 낮자 선진국 제도를 벤치마킹해 탄생한 것이 ‘디폴트옵션’의 배경이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인다던 취지의 디폴트옵션은 뚜껑을 열어보니 ‘원리금 보장형’에 약 90%가 몰려 있었다. 고금리기조에서 원리금 상품의 이자율이 높고, 변동성 장세에 신용 리스크까지 부각되면 안전선호 심리가 강해진다. 그런데도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선 “원리금 보장형이 포함된 것은 제도적 결함이므로 적격상품 유형에서 빼자”는 강경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국민연금 수익률은 –8.22%. 국민이 의무적으로 납부하며 쌓아왔던 ‘노후자금’이 운용전문가의 손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게 현실이다. 5대 은행의 3분기 말 기준 퇴직연금 디폴트옵션 적립금은 폭증했지만, 중위험군 이상 상품의 수익률은 물가상승률에 못미치고 있다.

게다가 향후 수익률 기대에 따른 투자 강제는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안고 있다. 현재 높은 수익률은 얼마든지 고점이거나 일시적일 수 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투자가 필수라면 그 대상이 꼭 안정성이 강한 퇴직연금이 돼야 할 이유는 없다.

금융회사는 손해 볼 게 없다. 본인이 상품을 지정해서 정기예금으로만 둬도 금융회사는 ‘자산수수료ㆍ운용수수료’를 꼬박꼬박 떼어간다. 정작 디폴트옵션을 운용하는 증권사는 전문성을 얼마나 갖추고 있을까. 서울 강남구 미래에셋WM(자산관리) 창구에선 IRP 상품 만기에 맞춰 예약매수로 직원이 이를 지정하는 데만 수시간이 걸린다. 수수료를 더 내면서도 비대면에 취약한 고객은 울상이다.

퇴직금은 직장생활 최후의 보루다. 일반적인 생애주기에 따른 자금운용 방식이 초고령화의 일반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전 세계적으로 경제여건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실물경제 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투자만을 강제할 순 없다. 모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지는 만큼, 투자에 대한 의사결정도 본인이 할 수 있는 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정도일 것이다.

사진:KB국민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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