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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의 끈끈한 화맥(畵脈)....가족사랑-열정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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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14 14:33:51   폰트크기 변경      
김성호 화백-김휘연 씨 이달 13~31일 인사동 갤러리 보다에서 ‘댄싱 위드 파파’전


자자손손(子子孫孫)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로 인연을 맺은 가족들이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한다. 유전자(DNA)를 통한 것인지, 생활 환경을 통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예술적 재능과 ‘끼’가 작품 속에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자식 세 명에게 모두 화업의 길을 열어줘 유럽미술의 토양을 더 풍요롭게 했다. 조선시대 중기 공재 윤두서와 그의 아들 윤덕희, 손자 윤용은 선비화가 3대의 화맥을 이은 조선시대 사실적 회화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남종 문인화를 이끈 소치 허유 선생을 시작으로 5대 후손 허진까지 이어지는 화맥도 빼놓을 수 없다.

김성호 회백(오른쪽)과 딸 휘연 씨가 14일 ‘댄싱 위드 파파’전이 열리는 갤러리 보다에서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김경갑 기자


◆김성호 화백, 딸과 함께 미학 여행현대 화단에서도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크고 작은 화맥을 이어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명의 화가’로 잘 알려진 김성호 화백(60) 역시 아내(박미숙)뿐만아니라 아들(김제언), 딸(김휘연)과 함께 화가로 활동하는 대표적 화맥이다. 김 화백은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양평 서종면에 그림처럼 자리한 별장형 작업실에서 애뜻한 가족 사랑을 기반으로 40년째 화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 화백과 그의 딸 휘연의 탄탄한 화맥을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마련됐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보다에서 13일 시작해 이달 31일까지 펼치는 ‘댄싱 위드 파파(Dancing with PAPA)’전이다. 최근 3년동안 공들여 작업한 작품 가운데 각각 7점, 14점을 골라 걸었다. 전시회 부제를 ‘사랑과 열정의 소나타’로 붙여 삶과 예술의 멋진 화음이라는 점을 클래식 선율처럼 껴안는다.

늘 곁에 있기에 공기처럼 익숙해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무관심해지기 쉬운 게 가족이다. 전시는 회화· 도예 등 작품을 통해 가족 간의 소통과 그 의미에 대해 되새겨보게 한다. 한 집에서 나온 한국판 인상주의 화풍과 도예 및 추상표현주의 경향의 작품들이 어떻게 다른지 등을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경기침체로 어렵고 지친 사람들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위로를 전달하겠다”는 부녀화가의 말이 겨울 햇살처럼 환하게 다가온다.

◆아버지가 이끌어 주고, 딸이 밀어주는 화연 인사동 전시장에서 만난 두 사람은 “한 지붕 아래에서 부대끼며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따로 또 같이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다”며 목소리를 냈다. 숙명적으로 한 겹의 ‘화연(畵緣)’을 쌓은 이들에게 미술의 넉넉한 감성은 가족의 분위기를 살리는 에너지가 되고 서로에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지만 예술적 동지로 여기며 살아온 김 화백과 휘연 씨는 자연스럽게 작업을 둘러싼 일화와 그 속에 스며든 미학적 감성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얘기를 풀어나갔다.김 회백은 “딸에게는 투철한 작가 정신과 스펀지 같은 센스가 있다”며 “작품을 대하는 진지함에 화가로서 존경심을 느낄 정도예요. 선 하나, 점 하나 오차도 인정하지 않을 정도니까요”라고 운을 뗐다. 그러자 휘연 씨는 “아버지의 작품은 딱히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땀과 정열의 산물‘이라며 새내기 아티스트로 살면서 참 많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김성호 회백의 ‘새벽-남산에서 본 서울’ 사진=갤러리 보다 제공


◆서로 예술동반자이자 당찬 비평가양평 서종면에 따로 작업실을 쓰고 있는 두 사람은 가족이면서, 때로는 날카로운 비평가이기도 하다. 김 회백은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작업의 세계만큼은 동화되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며 웃었다. “딸이 곁에서 같이 고민하고 같이 사랑하면서 같은 길을 걸어왔기에 예술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김 화백 말에 휘연 씨는 “가마와 캔버스 앞을 지킬 수 있게 해준 아버지 사랑에 항상 감사한다. 부녀이기 때문에 더 좋은 창작을 위해서 도예와 그림에 대한 고칠 점이라든가 비평을 굉장히 강렬하게 한다”고 응수했다.두 사람은 서로 닮은 데가 많다. 성격도 비슷하고, 그림을 그릴 때 집중하는 모습도 많이 닮았다. 붓을 잡은 지 40년째인 김 화백에 대해 딸은 “드라마틱한 미감을 가진 대범한 화가”라고 칭찬했다.

◆서정 화실서 예술혼 불사르는 창작열빛의 화가로 불리는 김 화백은 탄탄한 구성력과 밀도 있는 묘사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대구 태생인 그는 영남대 미대와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암울한 시기를 보내던 시절 깜깜한 도시 풍경이 마음에 들어왔다고 한다. 당시에는 친구들이 취업이냐 전업화가의 길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때였다. 새벽의 가로등과 달빛, 건물들이 적막하게 다가와 스케치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새벽 그림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분방한 필치의 감각적인 붓 터치로 여명의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역동적으로 묘사해 왔다. 하늘 위에서 보는 듯한 부감법을 적용한 색다른 기법 때문인지 그의 새벽 풍경화는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작가는 화업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컴컴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두레박’을 건져올리는 ‘마술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두운 도심, 팽팽한 긴장감, 넓게 퍼져 있는 불안감 등 현대사회의 단면만을 골라 화면 깊숙이 채워넣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과 중첩된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황폐해져가는 자신의 감성을 치유하듯 일종의 자가 처방전을 화면에 담아내려 했다. 그는 “빛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라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빛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김휘연의 추상화 작품. 사진=갤러리 보다 제공


◆새내기 미술가의 아름다운 도전 이화여대에서 도예를 전공한 휘연 씨는 다양한 시적 이미지를 채집해 일기를 쓰듯이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도자에서 출발한 그는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서 변화와 도전을 거듭해 왔다. 그는 흙과 불이 만들어낸 도예의 우연성에 주목하며 현대적 미감의 도자기를 만들어낸다. 회색빛 색감을 바탕으로 현란한 색감을 입혀 부드럽고, 고급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유럽의 신표현주의적 경향의 회화 작품들은 소소한 일상의 산물이다. 마치 행복한 삶의 표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듯 빨강색, 흰색, 분홍 등 밝은 색조로 가득하다. 그는 ”캔버스에 붓으로 칠하고, 찍고, 긁어내는 몸짓은 마음 속에 응집된 찰라의 순간을 차지게 잡아낸 감성”이라고 설명했다.

김휘연 씨의 도예 작품   . 사진=갤러리 보다 제공

김 화백은 딸의 작품에 대해 “우리 주변의 다채로운 이미지나 기호 등을 통해 신비롭고 아름다운 세계의 비밀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작품들은 진지한 삶의 자세가 만들어낸 결정체”라고 평했다.두 사람은 “지금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해질수록 가족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커지게 마련”이라며 “일생의 걸작을 남기기 위한 또 다른 여정에 들어갔다”고 마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김경갑 기자 kkk10@d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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