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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유례없는 특경법 가중처벌… 무죄율, 일반사건의 ‘1.7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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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3-12-20 05:00:25   폰트크기 변경      
[기업 옥죄는 배임죄 논란] ②‘경영판단’ 따른 손실인데…

모호한 요건, 포괄적 확대 적용

재판부마다 범죄성립 판단 달라

해외에선 민사상 손해배상 방식

법조계 “사익편취 기준이 바람직”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기업의 경영상 판단에 대해 배임죄 처벌 등 형사적인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업의 경영실패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게 되면 결국 기업을 소극적으로 운영하게 돼 투자 억제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픽: 이인식 기자 fever@


배임죄는 대기업 총수 등의 형사재판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계열사 부당합병ㆍ회계부정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다음달 1심 선고를 앞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도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됐다.

2015년 삼성물산ㆍ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이 기업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고, 배임 행위의 주체인 삼성물산 이사들과 함께 이 회장도 지시자 내지 공모자라는 이유였다.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점을 이용해 수사기관이 적극적인 수사ㆍ기소에 나서다 보니 배임죄의 무죄율은 전체 형사범죄에 비해 훨씬 높다.


지난해 사법연감을 보면 1심 처리 사건을 기준으로 횡령ㆍ배임죄 사건 3345건 중 195건이 무죄 판단을 받아 무죄율은 5.8%를 기록했다. 전체 형사사건의 무죄율(3.4%)에 비해 1.7배가량 높았다.

게다가 법원 재판부마다 배임죄 성립여부에 대한 판단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다. 재벌에 대한 엄벌 기조 등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는 셈이다.

C부장판사는 “법원에서도 배임 혐의에 대한 판단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경영 판단과 관련된 사안의 경우 무죄율이 훨씬 높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들이 투자 여건 등 여러 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렸을 때 사후적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는 게 기본적인 시각이어야 한다”며 “최근 형사재판부는 이런 기준을 굉장히 엄격하게 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기업 경영의 특수성을 감안해 경영 판단에 대한 형사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계 안팎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고의적이거나 개인적인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한 규제와 처벌이 필요하지만, 배임죄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면 결국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기업 경영 판단에 대해 배임죄 적용 대신 미국처럼 경영진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 등으로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회사에 이익을 가져다줄 것으로 믿고 성실하게 경영 판단을 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사에 손실이 발생했더라도 책임을 면제해 주는 ‘경영 판단의 원칙’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상법 개정을 통해 ‘경영 판단 행위일 경우 배임죄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명문화하고 이를 형법상 배임죄 등에도 유추 적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수사 전문가들도 배임죄의 대안이 필요하다는데 공감한다.

A 전 검사장은 “배임죄가 당장 폐지되긴 어려워 보인다”며 “결국 검찰에서 최대한 신중하게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백한‘사익 편취 행위’ 위주로 배임죄를 적용하는 방향이 현실적으로 가장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B 전 고검장도 “배임죄 폐지는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 행태 등 전횡을 견제할 수 있는 대안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며 “좀 더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특히 “대법원 판례의 상당수는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성만 있어도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손해가 발생해야 처벌하는 쪽으로 법원이 입장을 확실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대법원은 2017년 특정경제범죄법 위반(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낙영 SPP그룹 회장 사건에서 배임죄 성립 요건의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했다.

당시 대법원은 “기업 경영에는 원천적으로 위험이 내재해 있어 경영자가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의도 없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렸더라도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런 경우까지 업무상 배임죄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경영상의 판단을 이유로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는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 대상인 사업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의 개연성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 제반 사정에 비춰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하의 의도적 행위임이 인정되는 경우인지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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