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조성아 기자] 자주 걷는 동네 산책길에 좋아하는 다리가 있다. 정조대왕이 만든 만안교(萬安橋)다. 안양시 만안구가 이 만안교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안양(安養)이라는 이름 역시 만안교의 안(安)자와 함께 후손들에게 인륜의 근본인 효의 뜻을 살리기 위해 쓰인 양(養)을 합친 것이라 한다.
돌로 만들어진 이 다리를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종종 지난다. 자주 보는데도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은은한 조명과 함께 어우러진 늦은 밤의 만안교도 참 멋스럽다. 화려하진 않지만 자랑하고픈 우리 동네 ‘명소’다. 그래서 친구나 지인들이 놀러오면 이 다리를 보여주곤 한다.
과거 4대문 안에 살던 임금이 한강을 건너 강남으로 넘어갈 일이 생기면 ‘배다리’를 만들어야 했다. 한강 위에 배를 일정한 간격으로 놓아 막대기로 연결하고 그 위에 널빤지를 이어 붙인 다리다. 배다리는 가운데가 높은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다. 가운데에 큰 배를 설치하고 단계적으로 조금씩 작은 배들을 연결했다. 과학적으로 제작된 것이다.
조선 정조대왕은 경기도 화성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겨 놓고 자주 능행을 갔다. 그때마다 한강을 건너야 했고 그때마다 배다리가 설치됐다. 처음엔 노량진을 지나 남태령과 과천을 거쳐 수원으로 갔으나, 어머니 회갑연이 되자 길을 바꾸었다. 어머니가 다니기 편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의 시흥과 안양을 지나는 길로 그때 바뀌었다. 안양천을 지날 때도 다리가 필요했다. 원래는 나무다리를 만들고 한번 임금이 지나고 나면 부쉈다가 다음 해에 다시 만들었다. 임금이 한번 지나간 다리를 다른 백성은 쓰지 못하게 한 것이다.
정조는 이것은 백성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 여기고 돌다리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모든 백성들이 다 쓰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다리가 만안교(萬安橋)다. 만세(萬世)에 걸쳐 백성들을 편안(便安)하게 하는 다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말이 되었으나 정치권은 여전히 정쟁으로 가득하다. 더구나 올해엔 총선을 앞두고 금배지를 사수하고 빼앗으려는 이들의 이전투구와 줄서기가 볼썽사나울 정도다. ‘엄벌주의자’로 알려진 국민의힘 ‘영입 인재 1호’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수원 정 예비후보)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에 대해 “그 명품백이 진짜 명품백인지 아닌지 검증됐냐”라고 말해 빈축을 샀다. 논란의 핵심인 명품백의 ‘수수’가 아닌 엉뚱한 ‘진위’를 논하는 유체이탈 화법이다. 강력 범죄 대책과 엄벌을 이야기하며 국민들의 분노에 공감했던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은 어떤가. ‘비명(이재명)계’ 인사들이 줄줄이 총선 예비후보 등록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으며 벌써부터 ‘공천학살’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당 총선 예비후보검증위원회는 “명시적인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만년 동안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만안교. 이곳에 깃든 정조의 백성을 섬기는 마음이 바로 공직자가 갖춰야 할 자세일 것이다. 올해가 채 열흘도 남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과 정치인들로 인해 편안한 한 해를 보냈을까.
조성아 기자 j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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