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 전 경주에서 규모 4.0의 지진이 발생하였다. 서울에서부터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이고 규모 4.0에 불과한데도, 새벽 5시에 요란한 핸드폰 안내 문자가 울렸다. 그게 서울 시민의 새벽 잠를 깨워야 할 일이었을까? 규정이 그렇다면 규정을 다시 검토해볼 할 필요가 있다.
어디서건 지진이 발생하면 기자들은 전화를 걸어 내게 원자력발전소의 영향과 안전 여부를 묻는다. 아무런 영향이 없고 안전하다고 말하면 실망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나쁜 소식이 좋은 뉴스’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쁜 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대비해야 한다는 식의 답변을 짜내려고도 시도한다.
기자들은 언제나 ‘신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자도 마찬가지로 순환 근무를 한다. 전문가가 아니라 두루 거친 사람을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과학부 기자를 이런저런 취재 끝에 뭘 좀 알게 되면 바뀌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새로운 기자가 다시 그 일을 맡게 된다. 필자를 포함한 언론에 자주 나오는 인사들은 전문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참을성 있게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줄 능력자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리라. 언론에 나오는, 새로울 것도 없이 반복되는 기사는 모두 새로운 기자가 썼기 때문이다. 이제는 신문이나 뉴스를 보는 것이 지루할 정도이다. 과학부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사고를 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애초에 과학을 모르거나 과학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세포의 핵에 대한 이슈를 원소의 핵을 다루는 원자력 전공자에게 묻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과학부 기자가 필요 없는 것 같다. 정치부 기자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다. 언론사의 캐치프레이즈는 진실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그렇지 않다. 이슈를 만들어서 그것으로 장사를 할 뿐이다.
후쿠시마 처리수 방류에 대해서도 거의 모든 원자력 과학자는 위험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5명도 안되는,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들과 1대1로 토론을 시킨다. 그게 공평하다고 한다. 그게 무슨 공평인지... 진실을 추구한다면서도 언론은 자기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
지진이 발생하면 아마도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내가 사는 아파트나 지금 있는 건물이 붕괴되지 않을지, 아파트의 도시가스 배관들이 비틀려서 누설되지 않을지, 가까운 주유소에 화재나 폭발이 발생하지 않을지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것들보다 원자력발전소 걱정을 더욱 많이 한다. 그건 정상이 아니다. 원전 공포라는 프레임에 걸려서 사고가 비정상이 된 것이다. 원자력발전소가 걱정된다고 하더라도 일단 살려면 자기가 서 있는 땅을 먼저 걱정하는 것이 정상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지진의 규모가 진앙에서 측정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규모가 아무리 높아도 내 건물이 진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면 지진의 충격은 완화된다는 것을 모른다. 이것을 고려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또한 지진의 규모는 로그 척도라는 걸 아는 기자는 거의 없다. 심지어는 로그는 고등학교때 마지막으로 다뤘기 때문에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다. 그래서 진도 1 차이가 충격량으로는 2의 5승, 즉 32배 차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들에게 진도 4의 지진과 6의 지진은 1000배 차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래서 규모 4에도 흥분하는 것이다.
지진규모 6에도 안전하게 설계된 원전이 규모 4에 문제가 있을 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무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날 아침에 기사거리가 될 것이라고 잡은 이슈가 실은 아니라면 다른 이슈를 잡아야 할 것이지만 그것으로 기사를 짜낸다. 어떻게든 짜낼 수 있다. 심지어 취재과정에서 아니라는 얘기를 들어도 ‘우려’를 짜낼 수 있다. 동네 주민 등 일반인의 의견을 물으면 된다. 그것도 뉴스는 뉴스이다. 때로는 인터뷰에 나오는 편의점 주인은 사실 단순한 편의점 주인이 아니라 지역의 유명한 활동가인 경우도 있다.
당연히 주민은 원전이 걱정된다는 주장을 하고 기자는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허황한 언급으로 취재를 마무리한다. 똑같은 일이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반복된다. 언론은 가짜공포를 주입하고 있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