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동안 ‘주민들에 대한 김일성 혈족의 공개 행보’가 곧 세습자 선정을 의미했던 기존 북한의 세습 전례를 보면 전자 쪽에 무게가 실린다. 특히, 지난 2월 인민군 창설 기념일 열병식 때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가 딸 주애를 앞서 걷지 못하고 뒤에서 수행하듯 안내하는 모습, 그리고 김정은에게 아들이 있는지 모르지만 ‘첫째와 둘째는 딸’이라는 일부 평가 등을 볼 때 딸 주애에게 북조선의 왕권을 물려주는 ‘4대 세습’을 조기 추진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김일성 혈족만이 ‘왕’이 될 수 있는 구시대적 왕조 북조선에선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만, 장기간 그들의 행태를 바라봤던 연구자로서 ‘4대 세습 진행’ 움직임에 머리 한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북한이 김주애를 주민들에게 조기 공개한 행보에 숨겨진 의미는 첫째, 여자아이지만 김일성 혈족이자 북조선의 통치권을 인수할 적통으로서의 권위를 사전에 공고화하는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조선의 샛별 여장군’이라는 호칭은 가부장적인 북한에서 향후 여성이 ‘수령’이 되었을 때의 거부감을 미리 불식시키려는 의도다. 특히, 이러한 발 빠른 세습 행보는 북조선을 세운 할아버지 김일성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없고, 북한에서 ‘째포’라는 호칭으로 비하되는 재일교포 출신 어머니를 가진 김정은이 세습 과정에서 겪은 자격지심이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둘째, 미래세대의 표상인 나이 어린 김주애를 다양한 핵전력 공개 행사에 빠짐없이 동행하는 모습을 통해, 주민들에게 ‘김정은이 완성한 핵 무력이 조선 인민의 미래를 지켜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각인시킨다. 생활고 인내 및 미래를 위한 착취 강요 등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정당화하려는 선전선동술이다.
셋째, 그동안 북한이 세습 과정에서 후계자로서의 ‘자격’으로 포장할 이른바, ‘치적(治績)’ 선전용 도발을 이어왔음을 볼 때, 현재 북한은 무언가 우리를 향한 도발을 기획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유형은 지명된 후계자에게 씌워진 대내 선전 프레임에 크게 영향받는다.
김정일은 김 일가의 전(全) 한반도 통치를 정당화한 ‘주체사상’을 완성해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되고 1980년 공식 후계자 자리에 올랐다. 그의 세습기에는 판문점 도끼 만행(1975), 미 SR-71 정찰기 피격(1981), 대구 미 문화원 폭발(1983), 아웅산 테러(1983), 김포공항 테러(1986) 등 한반도의 ‘외세’인 미국과 경제적 격차를 벌려 나가며 김 일가의 전 한반도 통치를 위협하는 대한민국을 교란하는 데 도발의 초점을 맞췄다.
김정일의 뇌졸중으로 나이 서른도 안 되어 갑자기 후계자가 된 김정은은 후계 과정이 촉박한 만큼 치적 선전을 위한 도발 역시 급진적이었다. 그가 대내적으로 ‘수학 천재, 포병 전술의 대가’로 선전된 만큼 치적 쌓기는 천안함 폭침(2010), 연평도 포격(2010) 등 수학적 계산의 일종인 ‘탄도학(彈道學)’과 연관된, 미사일‧어뢰‧포병을 활용한 도발에 집중됐다. 이후 미사일 지도국을 ‘전략(로케트)군’으로 승격한 것 역시 치적 선전과 무관하지 않다.
김주애 세습기에는 어떤 분야·행태가 도발의 중심이 될 것인가? ‘샛별 여장군’이라는 선전 구호가 사실이라면, 그 도발엔 군사적 색채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이미지가 미래세대의 표상임을 고려한다면 신형 무인기, 전략잠수함, EMP 기술 등 새로운 무기체계 또는 최근 조직 통합‧개편 징후가 식별된 사이버 전력 등 ‘미래’와 연동될 수 있는 수단이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기존에 유지해 왔던 도발 수단에 대한 억제-대응 체계의 심화는 물론, 새롭게 개발했거나 확보가 우려되는 도발 수단에 대한 대응력 구축 등 4대 세습 체계의 구축 방향을 예측한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것은 2020년대에 말도 안 되는 ‘4대 혈족 세습’을 바라봐야 하는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김정호 국방대학교 직무연수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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