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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대통령실의 ‘한동훈 사퇴 요구’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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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22 17:00:07   폰트크기 변경      
지금은 매를 들 때가 아니라 자청할 때다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영입 환영식에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이 21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대통령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애초에 기획으로 본다”, “약속 대련이라고 하더라”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 쯤으로  분석했으나, 그렇게 치부하기엔 이번 내홍 사태로 보수 정치권이 입을 내상(內傷)이 너무 크다.

지난달 26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구원투수로 여당 지도부에 등판한 것은 용산 대통령실이 후원한 김기현 대표 체제로는 22대 총선 승리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당 안팎의 인식이 전제돼 있었다. 지난해 3월 당대표 경선 당시 대통령실이 안철수 의원, 나경원 전 의원 등 지지율이 높은 주자들을 노골적으로 밀어제치고 후순위에 처져있던 김기현 후보를 당대표로 만들 때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간평가 성격의 총선에서 2년 치적을 앞세워 승리를 이끌어낼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물론 여소야대 정국에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한 억울함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30%대 박스권에 갇혀 있는 윤 대통령 지지율로는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한 위원장에게 손을 내민 게 한 달 전의 상황이다.

이제 와서 한 위원장이 대통령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내친다면 총선을 목전에 둔 대통령이 던질 수 있는 카드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김건희 여사를 압박하는 김경률 비대위원의 언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물으려는 것으로 보이나 국민 정서와는 한참 동떨어진 처사다. 논란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김 비대위원과 원희룡 전 장관의 특정 지역구 출마에 한 위원장이 지지를 보낸 것을 문제삼으려는 듯 ‘사천(私薦)’을 거론하고 나섰지만, 그런 모습은 좀스럽고 비겁하다. 그것 때문에 비대위원장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이해할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참패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어떠한 비판에도 변명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평생 엘리트의식이 강한 관료조직에 몸담았다가 시대의 부름을 받고 전격적으로 정계에 투신한 윤 대통령 처지를 감안하면 그 발언은 늦게라도 민심을 존중해야하는 선출직의 운명에 대한 깨달음의 소치인 것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비대위원장 사퇴 요구 소식을 접했을 때는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전히 말 한마디로 조직을 좌지우지하던 과거 검찰 수장의 의식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선거 제도를 통해 최선의 인물이 뽑힌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가장 공정하게, 가장 불만이 적게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장치가 선거이기 때문에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고는 할 수 있다. 그걸 통해 윤 대통령도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것인 만큼 선거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낮게 봐서는 곤란하다. 자기부정에 다름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전국 선거를 앞둔 한 비대위원장이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육책을 쓰고 있는 데 대해 한배를 탄 대통령실이 총구를 옆으로 돌리고 하선을 요구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마치 “총선에는 져도 상관 없으니 내 방식대로 대통령 하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보수의 여망을 한몸에 짊어지고 우파 대통령에 오른 윤 대통령이 그런 생각을 갖는다면 상황을 오판하는 것이다.


앞서 보수정권의 몰락이, 서슬 퍼런 시절에 터진 ‘정윤회 문건 사건’을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식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쌓인 정권의 ‘불통’ 이미지가 임계점을 넘기면서 닥쳤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임기 초반의 오르막길에서 겪은 여소야대와 임기 후반 내리막길에서 겪을 수도 있는 그것은 차원이 다르다. 말 그대로 ‘식물정권’에 더해 사면초가에도 몰릴 수 있다. 총선 승리를 위해 매를 자청해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매를 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한마디로 공멸의 길이다. 이제 80일도 채 남지 않은 총선 정국에서 국민을 감동시켜야 하는 여권의 주인공은 한 비대위원장이란 점을 잊지 말고 더 이상 그의 입지를 흔드는 언행은 삼가야할 것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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