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찬 건설산업부장 |
한 발주기관 관계자는 최근 심각한 기술형입찰 유찰 원인과 대책을 이 한마디로 말했다.
10년 전 건설업계는 4대강살리기 사업 담합으로 막대한 과징금을 내고, 많은 관계자들이 형사 처벌을 받았다.
당시 이 사업은 한꺼번에 많은 턴키(설계ㆍ시공 일괄입찰)이 나오는데 이를 수행할 수 있는 건설사는 제한적이고, 이명박 정부가 역점사업으로 밀어 붙이면서 적정 공사비를 책정하지 않아 일정 부분 담합을 유도했다.
그 유탄은 오로지 건설업계가 맞아 지속성장을 위해 준법 경영을 추구하는 문화가 확산되며 공공분야 기술형입찰 시장에서 담합은 사라졌다.
그런데 기술형입찰 시장에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4대강살리기 사업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기술형입찰은 없지만, 적정 공사비를 책정하지 않는 정부 기조는 변하지 않아 유찰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최근 자재비와 인건비 등 물가가 급등하면서 유찰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2년 간 발주된 기술형입찰은 총 64건인데 이 중 무려 67%에 달하는 43건이 유찰됐다.
지난 해는 25조원 규모의 기술형입찰이 발주됐는데 이 중 14조원 가량이 공사비 부족 문제로 유찰됐다고 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술형입찰뿐만 아니라 설계비가 소요되지 않는 종합평가낙찰제인 기타공사까지 유찰이 확산되며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광주광역시가 발주한 ‘광주도시철도 2호선 2단계 건설공사’가 대표적으로, 총 8개 공구 중 2개 공구는 3차례나 유찰됐다.
나머지도 입찰자 상당 수가 예정가격을 초과 투찰하는 현상을 빚으며 어렵사리 시공사를 선정했다.
시는 우선 시공사를 선정한 공구만 착공식을 갖고 유찰된 공구는 언제 착공할 지 몰라 전 구간 개통은 어려울 전망이다.
이 같은 공공 인프라 구축사업은 국민의 편의와 복리, 안전 증진을 위한 것인데 잇따른 유찰은 사업 지연 또는 중단으로 이어져 결국 국민이 그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런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는지 얼마 전 행정안전부는 지방계약법을 적용받는 모든 기관에 ‘적정예산 확보를 통한 사업 발주 요청’이란 공문을 내려 보냈다.
지자체는 국비와 시ㆍ도비를 확보해 공공공사를 집행하는데 국비를 교부하는 행안부가 이런 공문을 지자체에 보내 의아함을 자아냈다.
요즘 대통령실에서 유찰 사태를 주시하자 행안부는 적정 예산을 줬는데 지자체는 그러지 못했다며 공을 떠넘기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행안부가 나선 것은 반길 일이다.
이제는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가 나서야 한다.
발주기관들도 적정 예산을 확보해 유찰을 방지하고 싶지만 기재부 예산실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한다고 토로한다.
어느 발주처에서는 “유찰이 1년 정도 더 이어져야 기재부가 움직일 것”이란 냉소적인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잇따른 유찰로 가까운 장래 국민들이 겪어야 할 피해가 뻔한데 재정 당국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직무 유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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