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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양질의 데이터가 리더 역량 더욱 끌어올려주는 시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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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06 05:00:21   폰트크기 변경      
[창간60주년-Triple Wave] 릴레이 파워인터뷰③ 차경진 한양대 교수

‘데이터 기반 고객 경험(DCX)’ 전문가인 차경진 한양대 교수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전통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거치면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시시한 그저 그런 서비스로 전락하고 있다”며, “리더에게 목적성 있는 양질의 데이터를 제공하면 의사결정의 품질이 좋아진다”고 강조했다. / 사진 : 안윤수기자 ays77@


[대한경제=김태형 기자] “상당수 경영진들이 ‘생성형 AI(인공지능)로 어떻게 업무혁신을 할까’에만 집중합니다. 다들 난리인데 우리만 손 놓고 있는 것 같아 조급하겠죠. 하지만 비즈니스 혁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첨단기술 활용에 앞서 목적이 명확한 데이터 센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겁니다.”

차경진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대한경제>와 창간 60주년 인터뷰에서 기업의 생성형 AI 활용법을 묻는 질문에 대뜸 ‘데이터 센싱’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디지털 시대에는 리더의 인사이트에 양질의 데이터가 더해지면 의사결정의 품질이 좋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도입이 세계적인 디지털 기업뿐만 아니라 제조, 유통, 자동차, 금융, 교육 등 거의 모든 산업에 걸쳐 중요해지고 있다. 차 교수는 기업의 빅데이터 구축과 AI 기술을 활용한 제품ㆍ서비스 혁신 분야의 전문가다.

재계에선 ‘숨고(숨은 고수) 스타강사’로도 불린다. 최근 수년간 삼성, SK, LG 등 주요 대기업들과 미래 디스플레이 경험, 스마트홈 서비스 경험, 푸드 스타일러 경험 등 다양한 산학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삼성그룹이 온ㆍ오프라인 1만3000여명 규모의 대형 강의를 맡겼을 정도로, 차 교수의 독자적인 분석 모델인 ‘DCX(데이터 기반 고객 경험)’가 비즈니스 혁신론의 핫아이템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인터뷰도 아모레퍼시픽 자문을 막 끝낸 뒤 진행됐다.

◇“노키아, 데이터 때문에 망했다”

차 교수는 제품보다 의미를 구매하는 ‘경험의 시대’에는 “기술과 품질만으로 고객의 마음을 두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고객 데이터를 일단 모아놓고 나중에 분석하면 뭐든 나올거라는 기대에서다. 차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세계 휴대폰 시장 1위 노키아는 데이터 때문에 망했다. 빅데이터는 강력하지만 그로 인해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망상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목적성 없이 수집한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원씩 지출하는 클라우드 비용이 아깝다”고도 했다. 데이터 그 자체로 금광이 아니다. 쓰레기인지 금인지는 캐봐야 안다는 것이다.

목적성 있는 데이터, 고객의 마음을 두드리는 데이터는 뭘까. 과거에는 고객을 이해하기 위해 고객에게 직접 물었다. 차 교수는 “이제는 고객이 다양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디지털 세계에 남겨놓은 ‘흔적’을 추적하고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설명한다.

우리의 일상이 모두 데이터화되는 시대지만 진짜 고객 데이터를 찾기란 더 어려워졌다. 동일한 페르소나(마케팅 대상)인데 역할ㆍ장소ㆍ시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경진이라는 사람은 대학교수이면서 워킹맘이고 며느리입니다. 제가 하는 역할과 머무는 장소와 시간에 따라서 저는 완전히 다른 고객일 수 있어요.”

고객의 생생한 ‘숨은 니즈’가 투영되는 디지털 세계인 소셜 미디어에서 쓰레기 데이터를 버리고 진짜 고객 데이터를 찾는 데 AI가 도움을 준다. 100만개가 넘는 데이터를 쓰레기인지 아닌지를 분류해야 할 때 유용하다. 기존에 알고 있는 문제와 답을 AI에게 공부시켜서 새로운 문제를 만났을 때 답을 찾게 하는 학습법(머신러닝)을 쓴다.

차 교수는 “사람은 기분에 따라, 컨디션에 따라 쓰레기 여부를 주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지만 AI는 학습한 대로 일정하게 판단해준다는 장점이 있다”며, “AI는 바로 이럴 때 활용해야 하며, 이런 영역이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차경진 교수는 제품보다 의미를 구매하는 ‘경험의 시대’에는 “기술과 품질만으로 고객의 마음을 두드릴 수 없다”고 말한다./ 안윤수 기자 ays@

◇분기마다 수천번 데이터 실험하는 쿠팡

생성형 AI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때도 유용하다. 차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줘야 하는 경험은 통계에서 찾아낸 한 가지를 잘 만들어서 모든 고객군에게 적용하는 서비스가 아니라 다양한 니즈와 맥락을 찾아 각각의 맥락에 맞는 개인화된 콘텐츠나 개인화된 서비스”라고 규정한다.

사람들은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과 더 함께 시간을 나누고 싶어하듯, 고객도 나를 더 깊게 알아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쉽게 떠나지 못한다.

이를 위해선 ‘데이터로 실험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 쿠팡이 대표적이다.

오늘의 쿠팡을 만든 ‘로켓배송’에 관한 의사결정도 외주 대비 자체 배송시스템을 이용했을 때 재구매율이 월등히 높다는 데이터 실험이 기반이었다. 구팡은 앱 내 결제 버튼 위치를 수시로 바꾸고, 다양한 할인쿠폰에 대한 고객 반응 확인 등 분기마다 이런 데이터 실험을 수천개씩 돌린다. 쿠팡이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2021년 상반기에만 무려 3000번이 넘는 데이터 실험을 했다. 차 교수는 “데이터 기반 실험은 가설 없이 접근하는 것보다 시간과 비용이 적고, 빠른 결과를 보게 한다”고 했다.

수천번의 데이터 실험을 기반으로 쿠팡은 지난해 창립 14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흑자(매출 31조8298억원, 영업이익 6174억원)를 냈다. 경기침체와 고물가로 경쟁업체들이 고전하는 상황에서 이룬 성과다. 특히 핵심 지표로 꼽히는 활성고객 수가 지난해 4분기 2100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 늘었다. 이들의 평균 구매액은 312달러(약 42만원)로, 대형마트 분기 객단가(15만원 수준) 대비 3배 가까이 높다.

◇더 많이, 더 크게 연결하는 것이 경쟁력

맥락적 센싱과 생성형 AI로 아무리 양질의 데이터를 뽑아내도 결국 최종 결정은 사람이 한다. 많은 비즈니스 기획이 처음에는 매우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시작하지만, 짜임새 있는 ‘공룡 대기업’일수록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수많은 의사 결정권자들을 거치면서 ‘가장 안전하고 가장 시시한 그저 그런 서비스’로 전락한다. 20∼30대 디지털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30∼40대가 기획하고, 50대가 결정하는 구조도 한계다.

차 교수는 “그동안은 직관과 감각이 좋은 리더가 훌륭한 리더였고 이에 기반한 의사결정이 때로는 더 혁신적이었다”며, “이제는 양질의 데이터가 리더의 역량을 더욱 끌어올려주는 시대”라고 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재는 정답을 잘 찾는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할 질문’을 잘 찾아야 한다. 차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맞는 뉴 스타일은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가치 창출 루프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이라며, “고객이 겪는 문제를 발견하고 의미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 시대의 고객 경험은 누가 더 크게 연결(connected)하고, 누가 더 많이, 잘 연결하느냐가 핵심경쟁력이 된다. LG전자가 올해 CES에서 자동차의 ‘개인화된 디지털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콘셉트카 ‘알파블(Alpha-able)’을 전시하고, 삼성전자가 테슬라와 협업한 에너지관리 서비스를 선보인 것도 같은 이유다. 차 교수는 “우리 회사 제품ㆍ서비스만으로 고객에게 개인화된 맥락 기반 경험을 충족하기 어렵다면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다른 생태계와 연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빅데이터ㆍAI 혁신사례]

‘1000억 적자’ LG…“TV 콘텐츠 플랫폼으로 5000억 벌었어요”


2024년형 LG QNED TV. AI 기술 기반의 ‘알파8 프로세서’를 적용해 더욱 뛰어난 화질과 음질을 제공한다. 사진: LG전자 제공


LG전자는 데이터와 AI를 활용해 개인화된 서비스를 구현하고 이를 통해 수익모델을 구축한 사례로 꼽힌다.

“LG전자가 재작년에 TV 팔아서 약 1000억원 영업적자였는데, TV 콘텐츠 사업으로는 5000억원을 벌었어요. LG전자는 더이상 TV 하드웨어 제조업체가 아니라 다양한 세대에 차별화된 경험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트프웨어를 갖춘 플랫폼 기업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LG전자는 고가 프리미엄 제품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시장에서 강력한 지배력을 앞세워 중국 제품보다 2∼3배 비싸게 팔았다. 하지만 고물가와 불경기 여파 속에 화웨이 등 중국업체들이 가격과 품질로 거세게 추격하는 상황에선 기존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TV, 가전에 콘텐츠와 서비스, 구독 개념을 결합한 플랫폼 비즈니스다. 기존에는 가전, TV를 판매하며 일회성 매출, 이익을 냈다면 이제는 전 세계 2억대에 달하는 LG 스마트TV를 통해 지속적인 매출과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패러다임을 전환한 것이다. LG전자는 TVㆍ가전 콘텐츠·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향후 5년간 1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차 교수는 최근 메타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와 LG전자의 만남에 대해서도 “LG TV의 콘텐츠 경쟁력을 위해 메타의 생성형 AI를 도입하고, 미래형 TV인 혼합현실(MR) 기기를 준비하려는 포석”이라고 해석했다.

차 교수는 “단순히 본질적인 기능만 제공하는 TV는 가격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런 ‘가성비 시장’에선 이제 우리 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고객 데이터를 많이 가지고 있는 기업이 유리하다”며, “LG전자는 스마트TV로 2년간 꾸준히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고, 외부 데이터와 연결을 통해 준비한 덕분에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해졌다”고 했다.

차 교수는 ‘생성형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없어도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LG전자의 사례를 해외 유력 학술지에 발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가 올해 CES에서 공개한 AI 집사 로봇 ‘볼리(Ballie)’도 새로운 로봇으로 정의한다. 이 로봇은 이전과 달리 집 안의 물건을 가져다주거나 청소를 해주는 등 특정 업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볼리의 역할은 본질적으로 집 안 상황을 감지하는 ‘데이터 컬렉터’다. 차 교수는 “고객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맞춤형 고객 경험을 선보이려면 상황의 맥락을 파악하는 로봇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차 교수는 지난해 GS건설과 ‘데이터 기반 1, 2인 가구 중심 미래 주거 경험 설계’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차경진 교수는?]

데이터 기반 고객경험 전문가…재계 ‘숨고 스타강사’


차경진 한양대 교수./ 안윤수 기자 ays77@

데이터로 인해 더 깊고, 넓고, 선명하고, 커진 고객 경험이 가능해진다는 ‘DCX(Data driven Customer eXperience, 데이터 기반 고객 경험)’ 개념을 정립했다. 학부에선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주임교수로, 대학원에선 비즈니스 인포매틱스(Business Informatics) 학과장을 맡고 있다. 경영정보시스템 박사로 ‘기업의 DX(디지털전환) 전략’을, 석사 과정에서 ‘추천 전문가 시스템’을 각각 연구했다. 2011년부터 삼성, SK, 현대차, LG, GS, 농협, KT, 두산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데이터 기반 고객 경험 혁신을 자문하고 관련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다. 현재 KB금융지주, 대상홀딩스, 아모레퍼시픽 자문교수다. 2022년 펴낸 <데이터로 경험을 디자인하라>가 교보문고 경영분야 1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한국스마트미디어학회 부회장, 한국IT서비스학회 이사 등 학계 활동도 왕성하다. 지난해 데이터산업진흥 유공자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차분하지만 단호하고 명쾌하게 데이터와 AI 활용법을 설명한다. 재계의 스타강사로 불리는데, 호소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차분한 김창옥’에 가깝다.


김태형 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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