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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식의 정치 클릭] ‘9공수 회군’과 ‘왕십리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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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3-06 12:26:51   폰트크기 변경      

 
더불어민주당의 전략 지역구인 서울 중·성동갑에서 공천 배제된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8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역 광장에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이날 임 전 실장은 당 지도부에 서울 중·성동갑에 자신을 컷오프(공천배제)하고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전략공천 한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촉구했다.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전 문재인대통령비서실장이 지난 4일 SNS에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 잔류를 결정한 것을 놓고 ‘왕십리 회군’이란 촌평이 뒤따랐다. 지난달 27일 당이 서울 중성동구갑에 전현희 전 국민권익위원장을 공천하고 자신을 배제된 데 반발해 다음날인 28일 왕십리에서 친문의원들과 만나 유세를 강행하고 이달 2일에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대표와 회동하는 등 탈당을 강하게 암시했다가 결국 주저앉은 데 대한 평가다. 일각에선 오는 8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을 염두에 둔 행보라는 해석도 나온다. 

회군의 원조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다. 고려 말인 1388년 명나라의 랴오둥(遼東)을 공략하기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해 우왕을 내쫓고 최영을 유배한 뒤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말한다. 조선 왕조 창건의 발단이 됐다.

최근 세간에 핫이슈로 부상한 회군은 1997년 12·12 사태를 그린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온 ‘9공수 회군’이다. 반란군의 1공수와 육군본부 측의 9공수 중에서 어느 쪽이 먼저 서울에 진군하느냐에 따라 쿠데타 성패가 갈리는 숨막히는 상황에서 전두환 측의 ‘신사협정’ 제의에 속아 육군참모차장은 9공수에 회군 명령을 내렸다. 9공수는 서울로 진입하는 어귀에서 유턴했지만 1공수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서울로 진군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무력으로 장악했다.

회군(回軍)의 사전적 의미는 군사를 뒤로 되돌린다는 것이다. 상대가 앞에 있다면 정면 충돌을 피해 한 발 물러나는 것이고, 뒤에 있다면 여세를 몰아 사생결단을 내겠다는 뜻이 된다. 위화도 회군 때는 상대가 뒤에 있었기에 이성계 세력은 곧바로 개경으로 진군해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새 왕조 개창의 발판을 마련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며 루비콘 강을 건넜던 카이사르와 방향만 다를 뿐 성격은 같다. 그에 비해 7공수 회군은 상대를 앞에 두고 뒤를 보였기 때문에 사태의 주도권을 놓친 데다 뒤통수까지 맞았다.

회군의 역사적 사례를 관통하는 최소한의 공통점은 사건을 전후해 서로 간에 피아 관계가 드러나고 상대에 대한 적의가 노출된다는 점이다. 거기서 ‘상대를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는 판단에서 적극 공세에 나선 쪽은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고 점잖게 한 수 물려주고 속도를 조절했던 쪽은 결국에는 패자로 전락했다. 홍문연(鴻門宴)에서 유방을 죽이라는 범증의 간언을 무시하고 그를 살려줬던 항우가 훗날 사면초가에 몰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과 유사하다. 9공수 회군에서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반란군으로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권 찬탈에 올인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 파악을 못한 진압군 수뇌부의 오판 때문에 신군부의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날아갔고 독재 연장의 문이 열렸던 것이다.

임 전 실장의 회군은 상대를 앞에 두고 뒤로 물러났기 때문에 초반 양상은 9공수 회군과 유사하다.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만약 탈당을 결행했더라면 제3지대에서 비명(비이재명)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와 손잡고 총선에서 민주당 몫을 잠식하며 이재명 대표의 대권 가도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회군은 스스로를 역사의 독립변수에서 종속변수로 만드는 변곡점이 됐다. 차기 당권에 이 대표 대항마로 나서든, 이 대표 체제에 순응하며 재기를 모색하든 그의 정치적 운명은 이번 일로 입지가 더욱 탄탄해진 이 대표에 달렸기 때문이다. 당권 도전을 위해선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 같은 걸로 낙마해야 승산이 생기고, 그게 아니라면 이 대표가 길을 열어줘야 빛이 보인다. 개인적인 차원을 떠나 그의 선택이 야권의 차기 대권 물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중대한 변수를 놓친 것이라면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아무튼  임 전 실장의 회군이 신군부의 수를 읽지 못했던 진압군의 궤적에서 얼마나 원심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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