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 집무실. 한미 정상회담을 막 끝낸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은 용산 집무실에 걸린 화가 픽셀 킴(김현우)의 작품 ‘퍼시 잭슨, 수학드로잉’을 감상하며 입가에 큰 미소를 지었다. 파랑과 노랑, 주황 바탕에 풀 수 없는 수학 공식을 빼곡하게 그려 넣은 그림에 두 정상은 화가가 쏟아낸 따뜻한 감성에 매료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픽셀 킴의 이 그림은 이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올랐으며, 작가를 단번에 인기작가 대열에 끌어올렸다.
픽셀 킴의 '에리크 토니우스 수학드로잉' / 사진=노화랑 제공 |
디지털 아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픽셀 킴에게 픽셀은 한국 현대미술의 또 다른 ‘영양분’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형식을 빌어 일상의 추억과 경험의 이미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학으로 승화해서다. 그래서 작가는 백남준의 후예답게 비디오아트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패기와 신념으로 일상의 경험을 화면에 녹여낼 때 가장 편하고 즐겁다고 한다.
다음 달 1~20일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펼치는 그의 개인전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장애 화가로 살면서 느낀 감정과 경험, 호기심을 죽어라 픽셀 미학으로 승화한 자리다. 자신의 삶의 기억들을 '픽셀'이라는 조형 요소에 담아낸 근작 30여점을 건다.
도형과 그래프 같은 수학공식이 빼곡이 담긴 작품은 물론 햄버거나 소지지 같은 현대인들이 즐겨찾는 먹거리, 애완동물를 팝아트형식으로 풀어낸 신작 등 30여점을 건다. 수학을 접목해 표현이 더욱 확장되고 과감해진 드로잉 작업도 풀어 놓았다.
그리고 전시 제목을 '3시 20분 픽셀의 기도'라고 붙였다. 그동안의 화업을 ‘열정의 산물’로 규정한 그는 자신의 그림을 ‘정신성(精神性)과의 조화를 통해 현실 세계를 담아내는 방식’이라고 했다.
픽셀 킴의 '그림자 숲향 수학드로잉' / 사진=노화랑 제공 |
실제로 다운증후군을 겪고 있는 픽셀킴은 삶을 대하는 모습과 경험을 자신만의 표현 방법인 ‘픽셀’을 통해 다채롭게 표현해왔다.
그는 수학에서 예술적 미감을 뽑아낸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정상인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던 그에게 수학 수업은 미지의 세계였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이 나오지 않지만 호기심의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 내내 선생님이 칠판에 그린 도형과 그래프, 수학공식을 자신의 노트에 따라 적었다. 그가 채운 수십 권의 노트는 2019년 화려한 픽셀미학으로 재탄생했다. 주옥같은 신작 ‘퍼시잭슨 수학드로잉’시리즈가 완성된 셈이다.
“어릴 적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를 수십번 읽었습니다. 작품 제목 ‘퍼시 잭슨’ 역시 신화에서 영감을 받았죠.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인 퍼시잭슨은 이도 저도 아닌, 어떤 것으로 표현하거나 정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풀 수 없는 수학공식 같았거든요. 그렇게 ‘퍼시잭슨’이 다루는 ‘번개’의 모양을 본뜬 세로무늬가 수학 공식과 연결돼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픽셀 킴의 '픽셀 드로잉' / 사진=노화랑 제공 |
작가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수학 기호 등을 재료로 인간, 우주, 자연의 무수한 인연을 축조하는 작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인생에서 그의 순수한 미학 언어 ‘픽셀’을 통해 삶의 다양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탐구했다는 얘기다. 인간의 감정이나 관념들과 같은 정신성을 화면에 구현해야지 눈에 보이는 형상만을 그대로 재현한 회화는 모방에 불과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화려한 색채예술의 영향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한국판 색면 추상세계를 자유자재로 보여준다. 침착한 바탕색 사이로 삐죽이 고개를 내밀면서 화면 분위기를 긴장감 있게 원색의 색면을 채운 후 수많은 수학 공식을 집어넣은 게 흥미롭다.
픽셀 킴은 그동안 ‘미술의 병’이 걸릴 정도로 작품의 진화를 이끌며 질주해 왔다. 2015년에 개인전 ‘두드림 금색달빛 밤’을 시작으로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진행했다. 2022년에는 자전적 에세이 ‘나는 직관적인 노래를 잘 부릅니다’를 출간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듬해 한국과 캐나다 수교 60주년 기념전 '모두의 어떤 차이' 등 여러 해외 프로젝트와 퍼포먼스, 워크숍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 국제적인 관록을 쌓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노세환 노화랑 대표는 “픽셀 킴의 작품들은 깜짝 놀랄 정도로 색감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라며 “미국 천재 작가 '검은 피카소' 장 미쉘 바스키아의 예술적 집념을 많이 닮아 구성력과 표현력, 완성도가 수학 공식처럼 빛난다”고 평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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