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권해석 기자]1971년에 미국이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는 금 태환을 포기하기 전까지 금은 돈이었다. 희소성이 있고, 가치도 오래 보전할 수 있는 금은 돈으로 쓰기 적합한 형태다. 물론 희소하면서 가치가 보전되는 물질이 금만인 것은 아니다. 은과 구리도 돈으로 쓰였고, 오래 전엔 조개껍데기가 돈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금만이 돈이 됐다.
금이 화폐시장에서 주류가 된 데는 아이작 뉴턴의 공이 컸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물리학자로 유명한 뉴턴은 영국 왕실의 조폐국장으로 일했는데, 그때 금과 파운드화의 가치를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처음으로 고안했다.
산업혁명으로 전 세계 경제를 이끌던 영국의 화폐 정책을 다른 나라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 많은 국가들이 순차적으로 금본위제를 택했다.
그리고 화폐전쟁의 승자는 금을 많이 보유한 국가의 지폐가 됐다.
1944년에 금 1온스당 미국 달러 35달러로 고정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등장한 것도 미국의 막대한 금 보유량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당시 전 세계 금 준비금의 70% 이상이 미국이 차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미국 말고는 아무도 지폐를 금으로 바꿔줄 수 없게 됐다는 의미였다.
물론 미국도 베트남 전쟁 등을 거치면서 금 유출이 심해져 금 부족에 시달리게 됐고, 1971년 금 태환 정지를 선언했다. 금의 화폐 지위는 이때부터 공식적으로 사라지게 됐다.
금이 사라진 자리에는 인플레이션이 등장했다. 인플레이션은 돈의 가치 하락을 뜻한다. 인플레이션은 화폐량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중앙은행이 필요에 따라 돈을 찍어낼 수 있게 되자 화폐량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지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정해진 경로였다.
과거에도 인플레이션은 돈이 많아졌을 때 발생했다. 콜럼버스의 지리상 발견 이후 아메리카의 막대한 금과 은이 유럽으로 들어왔는데, 통로 역할을 했던 스페인의 물가가 4∼5배나 뛰었다고 한다.
금과 교환할 수 없는 지폐는 그냥 종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폐에 적힌 액면가치가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믿음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이 사라진 지폐는 종잇조각이 된다. 실제 그런 경우도 있었다.
지금은 적당한 인플레이션이 당연한 시대가 돼 있지만, 지폐의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경제구조가 지속 가능한지는 사실 의문이다.
최근 금값이 많이 올랐다. 1온스당 2000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1944년 금 1온스당 35달러였던 점을 고려하면 가치가 60배 가까이 높아졌다. 반면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어 화폐 가치는 계속 내려가고 있다.
더 이상 금이 돈이 아닌 시대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금을 돈으로 여기고 있다. 금의 굴레에서 벗어난 각국의 중앙은행이 적지 않은 자산을 금으로 가지고 있는 것도 아이러니다. 종이 지폐에 대한 믿음이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중앙은행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금의 가치가 올라가는 지금, 과연 내 돈은 안전한가.
권해석 기자 haese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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