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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주택통계 트라우마’에 신음하는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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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5-08 05:00:22   폰트크기 변경      
김국진 부동산부장

“공돈 2000만원이 생기면 기분이 좋으니, 나쁘니?” A선배가 다가와 던진 질문에 “당연히 좋죠”라고 답했다. “그렇지? 근데, 우리 마누라는 왜 불같이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가네”라면서 고개를 젓는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집안 경조사 때 쓰려고 수년간 아끼고 아껴서 모은 비자금이 발각돼 몽땅 빼앗기고 밤새 잔소리에 시달렸다고 한다. 10여년 전 A선배의 얘기가 갑작스레 떠오른 이유는 최근 터진 국토교통부의 부동산통계 누락사태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통계조작 의혹을 대대적으로 수사 중인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통계로 사고를 쳤다. 국토부는 최근 작년 주택공급량 중 19만여호가 누락됐다고 실토했다. 42만9000호인 인허가주택이 38만9000호로, 24만2000호인 착공주택이 20만9000호로 4만호와 3만3000호씩 과소집계된 것. 특히 31만6000호로 발표된 작년 주택준공량은 무려 12만호가 늘어난 43만6000호로 드러났다. 올 1분기 준공주택량(12만5142호)과 맞먹는 실적이 누락된 통계를 믿고 기업은 경영전략을, 정부는 대책을, 국민들은 거래에 나선 셈이다. 통계 오류가 발생한 이후 ‘구원투수’로 부임한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원인을 면밀히 검증하고 빈틈없는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내부 감사를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강조했다.

주택 착공ㆍ인허가ㆍ준공량이 폭감해 ‘공급 절벽’ 공포에 휩싸인 시장상황을 고려하면 누락된 19만여호의 재발견은 공돈 못지않은 천군만마다. 공사비 급등과 PF 위기 아래 얼어붙은 시장여건 속에서도 수년간 하향곡선을 그린 주택준공량을 상승세로 돌려세운 국토부 공무원들을 포상해야 하지 않을까. 이전 정부 때의 통계조작과 결이 다른 이유도 국토부로선 작년 호실적을 숨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방위적 통계조작 수사 아래 ‘트라우마’에 빠진 국토부 분위기를 고려해도 실수였음이 명확해 보인다.

비판포화는 면할 수 없다. 비자금처럼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다. 주택인허가와 착공실적은 감소폭 차이만 있을 뿐 흐름이 동일해 다행이지만 그래프 방향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뒤바뀐 준공실적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이 통계 오류 발표 직전에 내놓은 주택시장 보고서상의 통계치와 정책 대안만 해도 수치가 틀려 헛다리를 짚은 꼴이 됐다. 민간연구기관과 업계의 혼선은 이를 능가한다. 개인적으론 국토부를 휩쓴 ‘통계 트라우마’와 MZ 공무원들의 몸사리기가 맞물린 참사가 아닐까 의심해본다. 과거 한 가지를 지시하면 밤샘작업을 통해 수십 가지 대안을 만들어오는 에이스 공무원들이 모인 주택토지실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실무진의 열정적 의욕과 노력이 이전 정부 때 통계 조작 사태를 오히려 키웠다는 얘기가 수사선상에 오른 고위 공무원들 사이에서 새어나오면서다.

사태 수습은 결국 선배들의 몫이다. 박상우 장관이 엄정한 감사를 통해 문책하되, 가능하면 빠르게 수습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론 에이스급 후배들이 트라우마를 벗도록 사기를 북돋울 필요가 있다. 용산 대통령실의 역할도 중요하다. 언제까지 이전 정부 국정 농단 척결에만 골몰할 생각인가. 그 와중에 공무원 사기가 꺾여 행정이 표류하면 그 피해는 국민들의 몫이고, 결과적으로 또다른 국정 농단의 타깃으로 전락할 뿐이다.


김국진 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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