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사전적 정의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좀더 단순하게 표현하면 ‘남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돈에서도 남을 움직이는 힘이 나온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주문하면 그것을 만들고 배달하기 위해 사람이 움직인다. 그 대가는 금전으로 치러야한다.
여기서 논하려는 권력은 그런 힘이 아니다. 금전적 대가 없이도 타인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정치 권력’이라고 하면 의미가 더 분명해진다. 국회의원도 그런 힘을 가진 정치인이기 때문에 예컨대 피감기관 공무원들은 그 앞에서 굽신거리고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 그런 분위기에 오래 머물다 보면 이른바 권력에 취해 사물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병리현상이 생긴다.
국회의장 후보자인 더불어민주당 5선 의원은 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총선에 드러난 민심’을 근거로 정국 현안에서 야당의 입장 관철 당위성을 강조했다. 그는 “저는 이번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는 국회가 돼야 된다 생각한다”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계속 거부권을 발동하고 있기 때문에 거부권을 넘어서려면 야권 전체 의석을 합쳐도 8석이 부족한 것을 넘어설 수 있는 정치력, 협상력 이런 것들을 갖추고 있는 국회의장이 판을 잘 깔아주는 실력이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야당 단독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에서 재의결이 가능하도록 국회의장이 나름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의미다. 국회의장에 당선되면 대놓고 야당 편을 들겠다는 뜻이다.
의장은 국회를 대표하고(제10조), 의장 당선된 다음 날부터 당적을 가질 수 없다(제20조의2)는 국회법 조항을 들며 의장의 ‘중립 원칙’을 거론하는 것은 그에게는 무의미해 보인다. 다만 ‘총선 민심’의 실체만은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총선을 통해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192석의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대승을 거뒀지만, 여야 득표율 차는 크지 않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소선구제에 따른 승자독식이 빚은 결과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지역구 의석수를 보더라도 각각 90석, 161석을 얻어 71석 차이가 나지만 양당의 득표율 격차는 5.4%포인트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을 지지한 유권자 45.1%가 민주당 지지자 50.5%의 뜻을 무조건 따라야하는 예속민이 아닌 이상, ‘총선 민심’을 그렇게 전가의 보도처럼 함부로 사용해선 안된다. 굳이 쓰겠다면, ‘총선에서 우리 야당을 지지해주신 민심’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현실을 호도해가며 국민을 현혹하려는 레토릭은 이제 지양할 때가 됐다. 개인뿐 아니라 소속 당도 마찬가지다.
여당 원내대표 경선 출마 가능성이 거론됐다가 후보등록을 하지 않은 이른바 ‘찐윤’ 의원은 전날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당이 선거를 치렀지 대통령이 치른 건 아니다”면서 “우리는 잘못이 없는데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프레임을 짜는 것은 지극히 위험스럽고. 우리 스스로가 정당으로서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밖에 안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에게 쏠리는 총선 참패 책임을 덜어주고, 선거 간판으로 뛰었던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 책임을 부각하기 위한 발언으로 보인다.
대통령 임기 도중에 치러지는 총선이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정치권 상식인데, 굳이 이를 부정하겠다고 총대 메고 나선 모습이 애처롭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2대 총선을 책임지고 치를 당대표 경선에 참모를 통해 노골적으로 개입해 유력주자들을 끌어내리고 ‘무감동’ 후순위 주자를 밀어올렸다. 본인이 2년 국정 성적표를 갖고 총선에 승부를 걸겠다는 각오를 하지 않고선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태였다. 그것만으로도 선거 책임론의 근거는 충분하다.
더욱이 ‘선거용’이라는 비판에도 강행했던 24차례 민생토론회,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등은 윤 대통령이 선거 정국에 직접 변수로 작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제 와서 ‘용산 잘못 프레임은 위험하다’는 발언은 설득력이 없고 억지스럽다.
물론 한 위원장이 ‘비례 재선’ 등 사천(私薦)에 가까운 비례대표 명단 논란으로 상당수 중도 표심을 돌아서게 한 잘못은 있다. 그렇다고 윤 대통령 책임이 가벼워질 수는 없다. 본인도 이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총선 패배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권력에 취하면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세상 일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고 평가해도 국민이 그럭저럭 따라올 것처럼 여겨진다. ‘지구 공전’을 넘어 ‘태양계 공전’까지 거론되는 시대에 천동설을 믿었던 중세 세계관에 갇히는 꼴이다.
중세의 허상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 같은 선각자들의 과학정신 덕분에 깨질 수 있었다. 권력에 취해 세상을 올바로 읽지 못하는 정신세계의 혼돈은 누가 바로 잡을 것인가. 가래로 막을 수 있을 때 본인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민의는 왜곡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각이 늦어질수록 쟁기로도 못 막을 역풍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역대 교훈을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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