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심화영 기자] 손에 피를 묻히지 않는 구조조정이란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악성현장의 기준은 금융당국이 정하는 게 아니다. 현장상황은 정부 의도와 다르게 흐를 수 있고, 충분한 실사가 선행돼야 하며, 그 과정까지 엄청난 진통이 수반된다. 내달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여부를 가려, PF사업장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 ‘부실 낙인’을 받는 사업장이 속출할 것이다.
당국이 2022년 가을 레고랜드 PF 부실이 터진 지 3년 만에 칼을 빼들었다. 지난주 뉴욕 출장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충당금을 쌓든 매각하든 현 상황을 유지하지 않는 게 핵심”이라면서 “부동산 PF 이해관계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조조정의) 시간을 더 끌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작년 4월 대주단협약을 만들 당시 ‘만기연장’에 초점을 맞춰, 364개 PF대출을 ‘만기연장’ 시켰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4월 총선이 끝나고 나서야 대수술이 시작된 셈이다. 정부가 이제서야 강화된 ‘PF 사업성평가기준’으로 부실사업장에 달린 산소호흡기를 떼려 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벌써부터 사업성평가 요소가 지나치게 ‘획일적’이란 지적이 나온다. 당국이 제시한 선별 기준은 대출기간, 만기연장 횟수, 토지매입 및 인허가 여부 등 정량적이다. 금융위는 “만기연장 횟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게 아니라 브릿지론은 인가가 됐는지, 본PF는 공사가 제대로 진척됐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본다”고 했다.
정부는 공사착공이 지연되면 2~3년 뒤에 주거위축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구조조정에 고삐를 죄고 있다. 대신 정상사업장은 살린단 점을 강조했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정상사업장에 대해선 확실한 자금공급이 가능할 것”이라면서 “현재 12조원의 보증지원 여력이 남아있고, 본PF 단계에서 공사비 증가로 추가 사업비가 필요한 경우 이를 보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나라살림 적자는 역대 최대다. 정부가 자금을 쉽게 공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소리다. 결국 당국의 권고에 따라 금융회사들이 소방수로 나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금융회사도 사업장이 가망 없다고 판단되면 손을 뗄 수밖에 없다. 현재의 PF 위기는 토지매입 과정부터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시행사의 오판, 금융권의 고위험을 도외시한 고수익 탐욕, 급변하는 금리가 빚어냈다.
부실사업장 정리가 시작되면 자칫 연쇄부도 사태로 확대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부동산PF 부실을 이연ㆍ누적한다면, PF리스크는 두고두고 우리나라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 아무도 다치지 않는 안전한 ‘연착륙’(소프트랜딩)은 허상이다. 정부 역시 ‘연착륙’은 ‘부동산 PF로 인한 피해 최소화’란 점을 강조했다. 부동산PF 사업성평가가 시작되면 미분양이 많은 지방 사업장이나 유동성이 적은 중소 건설사의 타격이 우려된다.
금융기관의 4분의 1이 만기연장을 반대하면 그 사업장은 ‘각자도생’으로 가게 된다.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의 허리인 건설사들이 이번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건설투자 보강, 준공 후 미분양 물량 해소 등 건설경기 회복책도 병행할 일이다. 정부가 강조해온 ‘질서 있는 연착륙’이 성공해 이들이 부동산 침체의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오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