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기준 전국 9만9139곳 달해
면허 등록 기준으로는 10.4만개
업체 증가했지만 일거리는 고정
실적·기술력 보유한 업체만 손해
[대한경제=최지희 기자] 한국에서 길을 걷다 보면 100m마다 편의점, 열 걸음마다 카페가 나타난다. 경기는 침체했는데 점포 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다 보니, 생존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그래도 이들 상황은 건설업보다 나은 편이다.
편의점과 카페가 입점한 건물 위층에 조용히 사무실을 꾸린 건설사들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올해 4월 기준 무려 9만9139개에 달한다. 종합건설업체는 1만9412개사, 전문건설은 7만9727개사다. 작년(10만782개사)이후 그나마 경기 침체로 폐업하며 줄어든 게 이 정도다. 심지어 여전히 면허 등록 기준으로는 10만4000개(종합 2만2132개ㆍ전문 8만1898개)에 달한다.
열 걸음마다 나타난다는 카페(9만6000개)보다 많고, 100m마다 등장하는 편의점(5만6000개)의 약 1.8배 수준이다. 국가통계포털 기준 대한민국 인구 5155만명을 적용해 인구당 건설사 수를 계산하면 국민 519명당 건설사 1개꼴인 셈이다.
건설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는 정부의 정책 영향이 컸다.
1988년 ‘건설업 면허 동결제’가 종료된 이후, 정부는 5차례에 걸쳐 등록기준을 완화했는데 이 가운데 주기적으로 종합ㆍ전문건설의 업역 체계에 손을 대며 건설사의 비정상적인 증가를 부추겼다.
특히 2019년 정부는 건설산업 생산체계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건설업 등록기준 중 자본금 요건을 기존의 70% 수준으로 완화했다. 이때 전문건설업은 자본금 1억5000만원만 있으면 철근콘크리트 등 주요 업종 면허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 프랜차이즈 치킨집 평균 창업 비용(K치킨 기준 1억9000만원)을 감안하면, 치킨집을 차리는 것보다 건설사 창업이 더 쉬워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하급수적인 건설사 증가가 지역 중소 건설사들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등록기준을 완화하면서도 정작 면허 관리는 외면하다 보니, 2019년 이후 지역 건설사들은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놓였다. 허울만 좋은 지역 SOC 사업에서의 지역업체 참여정책은 무자격 신생 업체에까지 동등한 입찰 참여 지위를 부여했다.
전영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미래산업정책연구실장은 “정부의 자본금 기준 완화로 인한 건설기업의 폭발적 증가에 따른 피해는 대부분 지역 중소 건설사로 집중됐다”라며, “이는 우리나라의 정책적 특수성에 있다. 정부는 신생기업의 공공 조달시장 참여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지역제한과 적격시장을 통해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기존에 지역에서 실적과 기술력을 쌓아왔던 건설사를 위기를 몰아넣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라고 지적했다.
지역에 소재한 중소기업 대부분은 역내 발주 공공건설 시장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대부분 지역에서 지자체 발주 물량의 90% 이상은 지역 내 중소기업이 수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쟁자의 증가는 곧 수주기회 감소를 의미한다.
수주기회 감소는 건설업 유지에 치명적이다.
건설업이 카페ㆍ치킨업와 다른 점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 기술자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종합건설에서 가장 기준이 약한 건축공사업만 해도 초급 및 중급이상 기술자 5명을 상시 고용하고 있어야 한다. 고정 인건비용이 크기 때문에 수주실적 감소는 곧장 폐업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2019년 등록기준이 완화된 이후, 2018년만 해도 224개사에 불과했던 종합건설업 폐업신고는 고물가ㆍ고금리 기조가 본격화된 2022년을 거치며 작년 581개사로 급증했다. 폐업업체 99% 가 지역 중소 건설사였다.
정형열 대한건설협회 부산광역시회장은 “과도한 경쟁 유발은 결국 시설물의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정부와 국민에도 손해”라며, “정부의 건설업 면허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와 함께 지역 건설사들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종합대책이 필요하다. 부실업체를 적정하게 정리하고, 적정공사비 확보와 지역업체 수주물량 확대를 통해 지역에서 기술력 있는 중소 건설사들이 성장해 지역 기술인력 고용에 앞장설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최지희 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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