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금 청구권 소멸시효 기산점 쟁점… 대법 “시효 안 지나”
[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이미 퇴사한 직원이 직무발명보상금을 뒤늦게 청구한 경우 현행 사내 규정이 아닌 재직 당시 규정을 기준으로 보상금 청구 가능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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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 대법원 청사/ 사진: 대법원 제공 |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A씨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낸 직무발명보상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특허법원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23일 밝혔다.
삼성전자 선임연구원이었던 A씨는 세탁기 필터 관련 기술 10건을 발명해 1997년 회사에 특허권을 넘겼다. 삼성전자는 특허 출원을 거쳐 1999년부터 A씨가 발명한 ‘다이아몬드 필터’ 등을 장착한 세탁기를 판매했다. 다만 A씨는 특허 등록 전인 1998년 퇴사했다.
퇴사 이후 17년쯤 지난 2015년 A씨는 6건의 직무발명에 대한 보상금을 회사에 청구했다. 발명진흥법은 직원이 회사에서 발명하고 특허권을 회사에 넘기면 회사가 정당한 보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삼성전자는 A씨가 발명한 기술 5건에 대해 등급을 ‘B급’으로 산정하고 기술 적용 기간을 고려해 모두 5800만원을 보상하기로 했지만, A씨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소송으로 이어졌다.
재판 과정에서는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가 쟁점이 됐다.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는 일반 채권과 같이 10년으로, 10년간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원칙적으로 소멸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은 통상 회사가 직원으로부터 특허권을 승계한 시점에 발생하지만, 근무규정 등에서 보상금 지급 시기를 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정해진 지급 시기부터 보상금을 청구할 수 있다.
A씨 퇴사 전인 1995년 개정된 삼성전자의 ‘직무발명 보상지침’은 보상금 지급 시기를 ‘특허가 회사 제품에 적용돼 회사 경영에 현저하게 공헌한 것으로 인정되고, 관련 부서 평가, 위원회 심의 및 대표이사 재가가 있을 때’로 정하고 있었다. 회사가 보상금 지급을 결정하는 때가 소멸시효 계산의 시작점인 셈이다. 반면 2001년 1월1일부터 새로 시행된 보상지침은 지급 시기를 따로 정하지 않았다.
1ㆍ2심의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A씨의 손을 들어준 반면, 2심은 2001년 시행된 보상지침이 적용된다는 전제하에 A씨의 보상금 청구권이 이미 시효가 지나 소멸됐다고 봤다. 적어도 2001년 1월1일부터는 A씨가 보상금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직무발명보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2심의 판단을 뒤집었다. A씨가 2001년 보상지침이 시행되기 전에 퇴직한 만큼, 2001년 보상지침에 따라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삼성전자는 1997년 A씨로부터 직무발명에 대한 특허를 받을 수 있을 권리를 승계했고, 이로써 A씨의 보상금 청구권이 발생했다”며 “그 당시 시행되던 근무규정은 1995년 보상지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A씨는 2001년 보상지침이 시행되기 전에 퇴사했는데, A씨와 회사 간에 2001년 보상지침을 적용하기로 합의하는 등 특별한 사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A씨의 보상금 청구권 행사에는 2001년 보상지침이 아니라 1995년 보상지침이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대법원은 A씨에게 5800만원을 주기로 한 회사의 결정이 타당한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사건을 돌려받은 특허법원이 이 부분을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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