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한국화가 조은(38)은 동양 정신의 화풍에 서구의 현대적 조형을 융합하면서 전통 산수화의 벽을 넘어서려 숨가프게 달려왔다. 오랜 시간 동양화에 대해 다양한 재료와 기법을 연구하며 자신만의 방법을 구축한 게 벌써 10년이 됐다. 최근에는 ‘사람은 서로를 비추면서 빛이 나는 구슬’이라는 화두를 부여잡고 자연과 인간의 다양한 모습과 일상을 화면에 담아냈다. ‘균형과 연결, 조화’에 집중하며 신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풍부한 화면의 깊이를 더했다. 퓨전 산수는 실물 그대로 묘사하는 전통 산수화와 달리 먹과 물, 아교를 사용해 한국적인 정체성을 담아내는 사의적(寫意的) 화풍이다.
조은의 '흐를 숲' 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
한국화의 정신과 서양화의 방식을 융합한 조씨가 지난 10년간의 실험 끝에 공들인 작업을 한껏 펼쳐보인다. 서울 종로구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지난 19일 시작해 다음달 10일까지 이어지는 개인전을 통해서다.
‘木木木 : 흐를 숲’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먹과 물, 아교의 자연스러운 번짐으로 자연의 생명력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18점이 걸렸다. 자연과 사람이 서로 에너지를 교류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당차게 잡아낸 작품들이다.
한여름에 작품을 모아 좋은 사람들과 포옹을 하듯 껴안고 싶은 화가의 마음을 담았다. “볼수록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작품이 됐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가멸차다.
전남대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조씨는 동서양의 미술 이론에 두루 밝을 뿐 아니라 그동안 붓을 놓은 적이 없으니 그림과 동행한 10년 세월이 이제 무르익어 숲처럼 흘러 내리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젊은시절부터 자연과 인간에 대한 관계에 대한 스토리를 무던히 즐겨왔다. 어린 시절 마주한 환상적인 공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일러스트로 그린 경험이 작품에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인지 작품에는 군상과 스토리가 함께 묻어있다. 자연 속 다채로운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이젠 자연스럽게 그의 뮤즈가 됐다.
20일 아트사이드갤러리를 찾은 관람객이 조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사진=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
작가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자연과 사람들은 질릴 수 없는 형상이자 관심사”라며 “다양한 모습의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은 환상적이고 창조적인 세계로 여겨졌다”고 강조했다.
전시장에 걸린 세로 240cm, 가로 480cm의 거대한 작품에는 숲과 호수, 수많은 현대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해맑은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들의 삶을 그려내면서 그들이 각자의 내적 세계에서 어떤 사색을 하고 있는지를 세세하게 잡아낸게 흥미롭다. 다만 작품 속 인물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실존하는 풍경 속에서 사람들이 온전히 휴식하거나, 자연과 교감하는 느낌을 담으려고 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또 다른 작품에서도 동양적인 면모와 대비되는 이국적인 풍경에 이질적인 감정과 함께 색다른 분위기를 느껴지고, 자연이 만들어낸 비정형적인 묵직한 리듬감이 시적 내재율처럼 번진다.
작가는 “관람객들이 실존하는 풍경들을 포착해 이상적인 공간에 맞게 재구성한 제 작품들을 보며 자연 속 유유히 흐르는 에너지를 전달받으면 한다”며 미소지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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