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 기준 누적 수주액 9794억 달러
국가경제 기여도, 반도체•자동차•석유제품 이어 4번째
올해 수주 목표액 400억 달러…2015년 이후 달성 못 해
대형공사 발주 ‘가뭄에 콩’…중소형 전략 사업 공략 필요
“EDCF 공사 등 제도 활용해 중소•중견사 기회 확대”
최근 한국 건설산업은 3고(금리ㆍ물가ㆍ환율), 3저(생산성ㆍ기술ㆍ수익성), 3불(부정ㆍ불신ㆍ부실) 등 3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건설산업 전체를 환골탈태하는 수준의 대혁신이 없이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게 건설업계의 전언이다. 이에 <대한경제>는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한 방안을 대한건설협회와 함께 제시한다. <편집자주>
사우디 파드힐리 가스 플랜트 공단 전경. 지난 4월 삼성E&A와 GS건설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9조6000억원 규모의 가스 플랜트 공사를 수주했다. / 사진:GS건설 |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누적 수주액 1조달러’와 ‘8년 연속 400억달러 미달’. 한국 해외건설 산업의 명암을 보여주는 대조적인 수치다. 우리나라의 해외건설은 1970~80년대 ‘1차 중동붐’과 2004년 이후 고유가 현상으로 찾아온 10여년의 호황기를 거쳐 어느덧 누적 수주액 1조달러 달성을 앞두고 있다. 올 6월 말 기준 누적 수주액은 9794억달러로, 연내 1조달러 돌파가 유력하다. 반면, 2015년 461억달러의 수주액을 기록한 이후 8년 연속 연간 수주액은 400억달러를 밑돌고 있다. 올해도 400억달러를 목표액으로 내세웠지만, 상반기 기준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황이다.
해외건설 사업이 정체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에는 2013년부터 불거진 대규모 부실 사태가 자리 잡고 있다. 2010년대 국내 건설사 간 저가 수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익성을 확보하지 못한 해외 사업장에 많은 업체가 발이 묶였다. 비슷한 시기 주택시장은 호황기를 맞으며 건설사들이 국내로 눈을 돌렸고, 해외사업은 2순위로 밀려났다.
하지만 국내 건설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다시 글로벌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몇몇 대형건설사들은 주택 사업 대신 대형 플랜트와 해외사업 확대를 위한 조직 정비를 마치기도 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등 일부 부동산 시장을 제외하면 주택 사업은 당분간 침체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해외 및 플랜트 사업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성장하는 글로벌 건설시장…2030년 21조달러 예상
해외건설은 1970년대부터 ‘오일머니’를 벌어들인 효자산업이었다. 지금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제품 등에 밀려 국민적 관심이나 정부의 지원 정책에서 소외돼 있지만, 여전히 4번째 수출 규모를 유지하며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최근 5년간 건설수지가 경상수지에 기여하는 수준은 9.3%로 분석됐다.
전 세계적으로도 건설시장 규모는 지속해서 커지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HIS Markit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건설시장 규모는 13조9000억달러였지만, 올해는 14조5000억달러, 2030년에는 21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지 맞춤형 중소 프로젝트 공략해야
팽창하는 글로벌 건설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선 수주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까지는 대형건설사가 1억달러 이상의 대형공사를 수주하는 데 각종 지원이 집중됐지만, 앞으로는 중소ㆍ중견 건설사가 현지 맞춤형으로 사업을 개발해 다양한 중ㆍ소형 공사를 추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래픽:이인식 기자 |
이 과정에는 공적개발원조(ODA) 중 유상 지원인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이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EDCF는 개발도상국의 산업 발전과 인프라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제공하는 장기 저리 차관이다. 한국의 EDCF 자금을 재원으로 발주된 현지 공사는 국내 중소ㆍ중견 건설사가 초도진출해 사업을 추진하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EDCF 공사는 국내 건설사 간 저가 수주 경쟁이 발생해 과거처럼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또한, 설계사 및 시공사 입찰에만 4∼5년이 소요되는 장기 사업임에도 공사비에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지 않아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애로사항도 존재한다. EDCF 공사의 발주 금액은 통상 5000만달러에서 1억달러 미만으로 책정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ODA 규모는 약 28억달러로, 일본의 16% 수준이다. 최근 5년간 EDCF 승인사업 규모도 연간 20억달러 수준을 유지 중이다.
이에 국가 브랜드 가치 제고와 중소ㆍ중견사 해외 진출 마중물 역할의 확대를 위해 ODA 규모를 늘리고, 업체 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낼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과거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해외 대형 프로젝트에서 과당경쟁은 거의 없어진 반면, EDCF 공사에선 저가 수주 경쟁 사례가 빈번하다. EDCF 공사는 중소ㆍ중견사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기 좋은 기회지만, 발주액이 높지도 않은 공사에서 한 번 손해를 보면 다시는 해외사업에 도전하기 힘들다”며, “공사별 지원 금액을 확대하고, 공구별 발주를 통해 많은 업체가 참여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기금을 운용하는 수출입은행도 WB(세계은행), ADB(아시아개발은행)처럼 공정 입찰을 위한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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