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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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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8-30 04:00:13   폰트크기 변경      

올 여름은 처서가 지나서도 폭염이 맹위를 떨쳤다. 폭염의 빈도와 강도가 날로 높아지는 것을 감안하면 기상청이 폭염의 원인과 구조, 사회적 영향 등을 담은 폭염 백서를 발간하기로 한 것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연내에 나올 백서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폭염 대책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기후변화 같은 재난에 대처하려면 정책 당국의 노력과 더불어, 정책의 이행력을 높이는 환경 조성도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필자의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작년 여름 서울시가 발표한 ‘반지하 주택 침수피해 방지대책’이 어느 정도 이행되었는지를 짚은 것이었다.

2022년 8월 서울에서는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신림동과 상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발달 장애인 가족 등 4명이 희생되었다. 사고 직후 반지하 주택 전수조사에 나선 서울시는 작년 7월 침수 위험이 큰 2만 4800여 가구에 물막이판과 역류방지밸브 등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설치 완료 시점으로 제시됐던 올 7월까지 침수 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가구가 7600여 곳이나 된다는 게 기사의 요지였다.

시가 비용을 전액 지원하는데도 이처럼 많은 가구가 침수 방지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침수 위험이 드러나 집값이 떨어진다”는 집주인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서울의 반지하 주택은 월세가 51%, 전세가 22%로 세입자 가구가 73%에 달한다. 집주인들은 이들의 안전보다 집값 하락을 더 걱정하면서 침수 방지시설을 사양했다는 것이다. 침수위험지구 등으로 지정되면 물막이판을 강제로 설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있지만, 정부나 지자체 모두 집값 하락을 이유로 한 주민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기사는 덧붙였다.

우리는 크고 작은 재난을 겪으면서 “안전은 최고의 사회적 가치”라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침수 방지시설 설치 관련 보도에서 보듯 안전이 금전적 손실로 이어지는 것을 꺼리는 경향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안전과 관련한 부담을 투자가 아닌 ‘소모성 지출’로 여기는 인식은 산업계에도 존재한다. 재해 예방을 위해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때면 예외 없이 “기업 경영에 부담을 준다”는 이의 제기가 뒤따랐다. 올 1월부터 50인 미만의 사업장으로 확대 적용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이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사업주를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상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경영계는 “법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처벌 수위도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안전·보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사업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에 경영계의 주장은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경영계는 법이 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및 운영, 재해 예방을 위한 예산 편성 등을 이행하는 데 따른 재정적 부담을 내심 더 걱정한다는 분석이 실제로 많았다.

건설사고 사망자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시행되고 업계도 노력한 결과 2017년만 해도 500명이 넘던 사망자가 작년에는 300명대로 감소했다. 이러한 성과를 얻는 과정에서도 업계의 부정적 반응이 없지 않았다. “건설업은 높은 곳에서의 작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른 산업보다 위험도가 높다”며 안전 관리의 부담이 커지는 데 대한 하소연이 특히 많았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과거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도 자주 오간다. 재해 사망자 감소 추세 등을 보면 근거 있는 얘기다. 하지만 1%의 부주의나 관행이 99%의 노력과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안전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모두가 바라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려면 1%의 틈새조차 용인하지 않는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수적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전적 부담이나 손실이 있더라도 기꺼이 안전의 편에 서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침수 방지시설을 설치하면 주택의 가치가 높아지는 사회가 진정으로 안전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김일환 국토안전관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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