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경제=이승윤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끝날 듯 말 듯 이어지고 있다.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김 여사의 6개 혐의에 대해 모두 ‘불기소’ 의견을 권고하면서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이번에는 김 여사에게 명품 가방 등을 선물한 당사자인 최재영 목사의 수사심의위 소집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막판 변수로 떠올랐다.
다만 이번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이 이미 ‘무혐의’로 사건 처리 방향을 정해놓은 상황에서 수사심의위를 한 번 더 연다고 해서 최종 처분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오는 15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쫓기듯 사건 마무리에 나섰던 이원석 검찰총장은 “현명하지 못한 처신, 부적절한 처신, 바람직하지 못한 처신이 곧바로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거나 범죄 혐의가 인정되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저희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분명한 사실은 이번 사태로 대통령의 측근 비리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의 필요성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의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을 비롯해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 공무원 등 대통령 측근의 비위행위를 감찰한다.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인사 관련 등 부정한 청탁을 하는 행위’나 ‘부당하게 금품ㆍ향응을 주고받는 행위’ 등이 모두 특별감찰관이 감시해야 하는 비위행위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특별감찰관 자리는 8년 전 이맘때쯤 이석수 초대 특별감찰관이 당시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감찰 내용 유출 의혹에 휘말려 중도 낙마한 이후 계속 비어 있다. 현행법은 ‘특별감찰관이 결원된 날부터 30일 이내에 후임자를 임명해야 한다’고 의무화하고 있지만, 8년 동안 위법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윤 대통령도 취임 전후로 특별감찰관 임명을 공언(公言)했지만, 금세 공언(空言)이 됐다. 후보를 추천해야 할 국회도 손을 놨다.
서울 종로구 청진동 타워8 빌딩에 있는 특별감찰관실 사무실에는 행정안전부ㆍ조달청에서 파견된 공무원 2명과 무기계약직 공무원 1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도 매년 5억∼7억원의 국민 혈세가 사무실 임차료ㆍ관리비로 쓰이고 있다.
오는 23일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초대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한 지 만 8년이 된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잘못된 과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통령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무리에 대한 감시와 통제를 소홀히 한다면 더 큰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
만시지탄이지만 윤 대통령이 “국회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해주면 임명할 것”이라는 두루뭉술한 답변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국회에 공식적으로 특별감찰관 추천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아직 윤 대통령의 임기는 절반도 지나지 않았다. 김 여사 관련 업무를 전담할 제2부속실 설치보다는 ‘워치독(Watchdog, 감시견)’을 들이는 게 먼저다. 역린(逆鱗)이 드러날까 두려워 특별감찰관을 임명하지 못하겠다면, 차라리 국회와 논의해 특별감찰관법을 폐지하고 다른 대안이라도 내놔야 한다.
이승윤 기자 le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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