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원 SDT 대표가 양자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제어ㆍ측정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윤수기자 |
윤지원 SDT 대표가 양자컴퓨터의 작동원리와 제어ㆍ측정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안윤수기자 |
내년 1분기 중 3개 제품 공개
보안 분야 중국산 장비 대체 기대
양자컴퓨터 데이터센터도 구축
부품ㆍ서비스 기업의 테스트베드
초전도ㆍ극저온에서 경쟁력 창출
[대한경제=김태형ㆍ심화영 기자] 미래 컴퓨팅 혁명을 이끌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독특한 행보를 보이는 기업이 있다.
2017년 설립된 SDT는 양자컴퓨터의 핵심 디바이스를 제조하고 제어ㆍ측정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업이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양자컴퓨팅 시스템을 공부한 1990년생 윤지원 대표가 이끄는 이 회사는 세계 양자컴퓨터 시장에서 ‘제조 허브’를 꿈꾸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전자가 갖는 양자역학적 현상을 활용해 연산하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다. 현재 컴퓨터가 0과 1로 정보를 처리하는 것과 달리, 양자컴퓨터는 중첩 상태를 활용해 동시에 여러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이론상으로는 특정 연산에서 현재 수퍼컴퓨터보다 수백만배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SDT가 주목하는 건 바로 이 양자컴퓨터의 ‘공학적 난제’다. 양자컴퓨터는 이론적 토대는 마련됐지만, 실제 구현을 위해선 수많은 공학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SDT는 현재 초전도체, 실리콘 스핀, 중성원자, 이온트랩 등 다양한 방식의 양자컴퓨터 제어ㆍ측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양자컴퓨터는 F1 머신처럼 섬세한 관리가 필요합니다. 지금은 물리학자들만 다룰 수 있죠. 우리는 물리학적 레시피를 공학적 레시피로 바꿔 대량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SDT의 전략은 명확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풀스택’ 양자컴퓨터 개발 대신, 제어·측정 장비와 같은 틈새시장을 공략한다. 현재 양자컴퓨터용 제어·측정 장비 시장은 핀란드와 영국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SDT는 여기에 도전장을 냈다.
“한국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았습니다. 정밀 전자장비 제조는 우리의 강점이죠. 중국은 엄두도 못내는 수준의 제조 기술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1990년대 한국이 반도체로 도약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만들고 싸게 만들고 많이 만드는 게임이 여전히 가능한 영역입니다.”
SDT는 내년 1분기 양자기술이 접목된 3개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보안통신장비, 보안카메라, 적외선카메라다. 특히 보안 분야에서는 중국산 장비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중국산 보안장비 배제 움직임이 확산되는 가운데, SDT의 제품은 새로운 대안이 될 전망이다. 양자기술을 반영한 고품질의 제품을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설계ㆍ제조하는 것이 목표다. 2022년 KIST로부터 이전받은 양자암호통신장치 기술이 기반이다.
더 큰 도전도 준비 중이다. 내년 하반기엔 서울에 국내 최초의 양자컴퓨터 데이터센터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약 100억원 규모의 이 시설은 연구진들의 실험장이자, 관련 부품·서비스 기업들의 테스트베드가 될 전망이다.
“일본이 최근 600억원을 들여 양자컴퓨터를 구매했습니다. 자국 기업들의 차세대 부품을 검증하는 테스트베드로 활용하기 위해서죠. 영국도 자국의 초정밀 레이저 기술을 검증하는 용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SDT의 비전은 더 크다. 양자컴퓨터는 시작일 뿐이다. 초전도, 극저온, 광학 등 첨단 기술이 융합된 초정밀 제조 분야에서 한국의 새로운 경쟁력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는 ASML처럼 독보적인 기술력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장비 기업을 꿈꾸는 포부다. ASML은 세계 1위 반도체 장비 업체이자 ‘수퍼 을(乙)’로 불리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유일 제조업체다.
“우리는 ‘양자컴퓨터 공장’이 되려 합니다. 실제 사용처는 글로벌이 될 수밖에 없죠. 현재 동남아 주요국과 데이터센터 수출도 논의 중입니다. 원전 수출처럼 기술이전과 운영 가이드까지 제공하는 패키지 딜이 될 것입니다.”
SDT는 올해 프리IPO를 마치고, 내년 하반기 IPO 절차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미래 컴퓨팅 혁명을 이끌 양자컴퓨터 시장에서 한국의 제조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형ㆍ심화영 기자 kth@
〈ⓒ 대한경제신문(www.dnews.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