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 이중섭 화백(1916~1956)은 한국인에게 각별한 대상인 소의 특성을 선하면서도 우직하게 묘사했다. 6·25전쟁을 피해 1951년 가족과 함께 제주 서귀포에서 1년 가까이 산 시점을 경계로 민족적인 주제의식에서 점차 자전적인 내용으로 옮겨갔다. 서귀포 시절에는 소를 중심으로 한 향토적·서정적 주제에서 벗어나 아이들과 게, 물고기, 닭, 가족을 다룬 자전적 요소가 한층 두드러진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부산에 살면서 서귀포를 배경으로 가족의 사랑과 행복을 화면에 되살려냈다.
이중섭의 1952년작 '닭과 가족'. 사진=케이옥션 제공 |
이중섭의 1950년대 작품 '닭과 가족'을 비롯해 김환기, 독일화가 게오르그 바젤리츠, 미국의 조지 콘도 등 국내외 유명 미술가들의 수작 83점이 가을 경매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케이옥션이 오는 23일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실시하는 기획 경매를 통해서다. 출품작의 추정가만도 83억원에 달한다.
아트 컬렉션에 심취한 애호가들은 물론 그림 매니아들이 재테크 수탄으로 배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더구나 한국은행이 지난 11일 기준금리를 내리며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나섬에 따라 아트테크 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손이천 케이옥션 홍보이사는 “아트 시장에서 희귀한 명품들의 소장 가치가 점차 높아지고 있어 마켓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며 “미술경기가 점차 활기를 띠는데다 미술품 애호가가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림 투자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케이옥션은 이번 가을경매 ‘전략 상품’으로 이중섭이 1952년 가족들과 보냈던 시간을 화폭에 담아낸 작품 ‘닭과 가족’을 라인업했다. 암탉과 수탉, 병아리들이 사람들과 뒤섞여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색채 미학으로 포착한 휘귀작이다. 병아리들이 가득 든 광주리를 들고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난만하게 느껴진다. 케이옥션 측은 “이중섭은 한국 현대 미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이 작품은 1955년 1월 미도파 화랑에서 열렸던 개인전에 나온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경매는 10억원에 시작될 예정이다.
김환기의 '항아리' 사진=-케이옥션 제공 |
백자 수집가로 유명했던 김환기가 도자기를 그린 '항아리'도 출품된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1958년 작품이다. 항아리와 함께 나무와 산을 화폭에 수놓았다. 순백의 빛깔에 유려한 곡선,
보름달을 연상케하는 항아리의 격조 있는 색채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케이옥션 측은“작가의 서정이 가득 어린 이 작품은 전형적인 1950년대 파리시절 작품이기에 그 소장 가치 또한 높다”고 강조했다. 추정가 9억5000만∼15억원이다.
한국 단색화 거장들의 작품도 다양하게 경매에 오른다. 윤형근의 ‘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2억5000만~5억원)을 비롯해 정상화의 ‘무제 89-3-5’(2억~4억원)와 ‘무제 75-3’(2억~4억원), 이우환의 ‘조응’(2억4000만~5억원), 서승원의 작품 ‘동시성 21-203’(8500만~1억3000만원) 등이다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새 주인을 찾는다.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 ‘드라이스트라이펜말러(Dreistreifenmaler)’, 사진=케이옥션 제공 |
외국 유명화가들의 작품들도 전면에 배치했다.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경매도록의 표지를 장식한 독일 신표현주의 거장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 ‘드라이스트라이펜말러(Dreistreifenmaler)’이다. 추정가만도 7억원~15억원에 달한다. 핵심적인 주제인 인물의 형태를 해체해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고스란히 담아낸 수작이다. 특히 흑백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현대인의 불안과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거꾸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한 바젤리츠는 전후 독일의 역사적 상처와 불안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고통과 사회적 트라우마를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더구나 기존 미술 관습에 도전하며 회화의 경계를 확장,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현대 초상화와 심리적 표현주의의 새 장을 연 미국화가 조지 콘도의 직품 ‘블루 다이아몬드’도 나온다. 변형된 얼굴과 광기 어린 표정의 인물을 통해 인간 내면의 혼란과 불안정함을 표현한 콘도의 전형적인 스타일의 작품이다. 웃음이라는 가면 속에 감춰진 인간의 냉랭한 심리를 투영한 듯하다.
현재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고 있는 스의스 출신의 화가 니콜라스 파티의 작품 ‘두개의 배(Two Pears)’도 경매한다. 두 개의 배를 단순한 형태를 초현실적인 미감으로 승화한 작품이다. 파티 특유의 색채와 질감 덕분에 관람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전통적인 정물화의 재해석을 통해 예술적 상상력을 강조한 이 작품의 추정가는 4억~5억5000만원이다.
니콜라스 파티는 그동안 회화, 조각, 벽화 등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 정물화, 풍경화, 초상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을 해왔다. 특히 소프트 파스텔을 사용해 독특하고 유니크한 미학을 완성한게 이채롭다.
출품작들은 경매가 열리는 23일까지 케이옥션 전시장에서 무료로 만날 수 있다. 경매 참여를 원하는 경우 케이옥션 회원(무료)으로 가입한 후 서면이나 현장 응찰, 전화 또는 온라인 라이브 응찰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경매가 열리는 23일 당일은 회원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누구나 참관이 가능하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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