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80여분간 차담을 가진 뒤 만찬은 추경호 원내대표를 초청해 정진석 비서실장 등 참모들과 함께 했다고 한다.
한 대표를 정 비서실장과 동격으로 테이블 맞은 편에 앉혀놓고 굳은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는 윤 대통령 사진과 맛난 음식을 앞에 놓고 화사한 미소로 추 원내대표와 교감했을 만찬 장면이 오버랩되면서 전임 우파정권인 박근혜 정부의 흑역사가 소환된다.
흔히들 정치는 ‘사람 장사’라고 한다. 다른 업역도 크게 다를 바 없겠지만, 정치인은 당내 경선에서든 본선에서든 표를 얻어야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는 사람, 위아래 개념이 없는 사람, 본인에게 적대적인 사람 등도 가능하면 두루 만나 진지하게 대화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역량이 이른바 ‘정치력’의 구성요소다. 그 결과, 상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면 최선이고, 타협점을 도출하면 차선이며, 적의를 누그러뜨리기만 해도 소득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람을 가려서 만나는 ‘사람 편식’이 심한 인사는 정치지도자로서 중대한 결격사유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람 편식이 강했던 편이다. 자신을 지지하는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넘쳤기 때문에 굳이 ‘비박(非朴)계’ 정치인을 상대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친이(친이명박)계’ 쪽이었던 인사도 있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 이른바 ‘레이저(눈총)’를 맞고 친박에서 비박으로 돌아선 정치인도 적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본인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인사, 자신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을 선호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도 본인에게 ‘쓴소리’를 예고한 한 대표는 딱딱한 테이블에서 만나고, 경제부총리로 수하에 데리고 있었던 추 원내대표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만났다고 하니 박 전 대통령 못지 않은 ‘편식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원조 친박 좌장’에서 수년에 걸쳐 비박계 좌장으로 변해갔던 김무성 전 대표를, 추 원내대표는 박 정권에서 경제부총리를 지낸 뒤 원내로 돌아가 친박 좌장으로 활동했던 최경환 전 의원을 각각 연상시킨다.
‘사람 편식’에 대해 한국 정치문화에선 ‘신의(信義)’의 중요성을 얘기하며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지도자로서 내부인의 배신이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에 끝까지 믿을 수 있고 의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한 대표가 언젠가는 자신과 ‘차별화’에 나설 사람으로 보이고, 추 원내대표는 보수텃밭 TK(대구경북) 출신 정치인으로서 신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연장선에서 윤 대통령은 만찬을 같이하면서 추 원내대표에게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3차 특검법안이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쳐질 경우 부결될 수 있도록 표단속을 잘 해달라는 부탁도 이심전심으로 했을 듯싶다.
정치권에서 사람 편식의 대가는 혹독했다. 2016년 12월 박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비박계 의원들의 찬성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 결과 박 전 대통령은 권좌에서 끌어내려졌고, 우파정권은 붕괴해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윤 대통령 경우도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만 작심하고 돌아서면 김 여사 특검법안 저지선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야당 추천 특검은 날개를 달아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파헤칠 것이다. 특검의 칼날이 정권의 심부까지 파고든다면 그 종착점은 어디가 될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다. 물론,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소득주도성장정책, 탈원전정책 등을 밀어붙이며 온 나라를 전인미답의 경지로 끌고 갔던 문재인 정부 5년의 학습효과 때문에 친한계가 섣불리 ‘사선’을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는 게 정치의 속성이다.
여의도 정가에선 정치에서 신의의 가치 근거로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말했다는 ‘무신불립(無信不立·백성의 믿음이 없어지면 나라가 서지 못한다)’을 곧잘 인용한다. 공자는 ‘군주가 백성의 믿음을 얻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으나 후세에는 개인 간의 믿음 문제로 변질됐다. 그나마 군주가 국가와 동일시되던 왕정시대에는 군주를 위한 신의도 충성의 범주에 들어갔기에 크게 문제될 게 없었지만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을 포함해 주군에 대한 신의로 이를 해석한다면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정치인이 신의를 지켜야할 대상은 ‘국민’이 정답이며 ‘국익’도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계파의 보스뿐 아니라 심지어 대통령도 그 반열에 오를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이 2013년 10월 여주지청장 신분으로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검 국감에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사람 충성 거부’를 선언해 8년 뒤 대권 도전의 포석을 놓았던 윤 대통령이 지금 와서 본인의 뜻에 순종하는 인사 위주로 ‘사람 편식’ 증세를 보이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
권혁식 논설위원 kwon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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