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궁중도자기를 비롯해 고려시대 청자, 갈색의 소반과 반닫이, 책가도 병풍, 자개함, 민화 등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진귀한 골동품을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정찰제로 살 수 있는 대규모 고미술장터가 열린다.
한국고미술협회(회장 김경수)가 31일 시작해 다음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펼치는 ‘아름다운 우리 고미술’전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이 행사에는 고미술 전문 화랑 50여곳이 참가해 부스별 판매 형식으로 회화·조각·민속품 4000여점을 전시한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우리 문화유산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알린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직장인이나 주부, 기업인 컬렉터들이 연말을 맞아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골동품을 구입해 집안과 사무실 분위기를 산뜻하게 꾸밀 수 있는 기회다. 화랑 주인에게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고, 가격 흥정도 가능하다.
김경수 한국고미술협회 회장은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스상으로 한국 문화에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시기에 맞춰, K컬처의 모티브인 우수한 우리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국가 품격을 드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고미술화랑들은 희귀한 도자기, 사료적 가치가 높고 옛그림, 민속품, 목기, 금속공예품 등 전략 상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고려시대 재작된 ‘청자상감포도문매병’. 사진=한국고미술협회 제공 |
고려시대 제작된 높이 35㎝이 단연 눈길을 끈다.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매병으로 포도 넝쿨무늬가 인상적이다. 고려시대 도자의 뛰어난 예술성과 기술력을 단번에 체감할 수 있다. 도자의 상단과 하단에 연판무늬가 새겨졌다. 포도송이 테두리는 백토로, 잎과 줄기는 흑토로 그려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조선시대 유물 ‘경기도약장’ 사진-한국고미술협회 제공 |
조선시대 유물 ‘경기도약장’도 모습을 드러낸다. 상단에 5개, 가운데 108개의 약서랍을 갖추고 있다. 박쥐형 풍혈을 비롯해 족통과 족대의 형태, 주석경첩 등이 전형적인 경기도약장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중요한 약재는 별도로 보관하기 위해 여닫이 문 안쪽에 내부 서랍을 만들어 실용성과 균형미를 살려냈다.
조선시대 명품 도자기 ‘백자청화보상화문각병’ 역시 볼거리다. 목과 동체 모두 육각 형태의 청화백자로 몸통에는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보상화문(寶相花紋)을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목의 중심부가 약간 가늘어서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인다. 추상적인 무늬 기하문(幾何文)을 비롯해 번개문양의 뇌문(雷文), 화판문(花瓣文)을 고루 배치한 게 흥미롭다.
조선시대 초기에 인기를 끌었던 ‘분청자조화모란문호’도 관람객을 반길 예정이다. 높이 솟은 목에 넓은 어깨가 안정감을 주면서 당당한 풍모를 풍긴다. 모란문양을 조화기법으로 그려넣어 생동감과 호방함이 느껴진다.
18세기 후반부터 문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필통 ‘백자청화산수문지통’도 전시장에 소환된다. 버드나무 아래 누각과 삼산봉(三山峰), 넓은 강, 노를 젓는 사공,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을 감칠맛 나게 그려 넣었다. 청백색이 은은하게 새어나오고, 굽에는 고운 모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화가 최북의 ‘전원난사도’ 사진=한국고미술협회 제공 |
조선 후기에 활동한 화가 호생관 최북이 시골생활의 즐거움을 화면에 승화한 산수화 ‘전원난사도’도 나온다. 최북은 산수와 메추리를 잘 그려 최산수(崔山水), 최순(崔鶉)라고 불리고 했다. 농촌 풍경을 고즈넉하게 살려낸 이 그림은 주위의 경물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단순화시켜 진경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세창에게 글씨를 배운 서예가 원충희 씨는 이 그림을 “필치의 기세가 종횡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넘친다”평했다.
고려시대 제작된 조롱박 모형의 도자기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도 만날 수 있다. 몸체에 상감기법으로 새겨진 국화문양이 돋보이고, 투명한 담녹색이 감돈다. 부드럽고 완벽한 대칭 균형을 이루는 기형과 그윽한 맛을 자아내는 유색의 조화가 일품(逸品)이다.
조선시대 궁중에서 사용된 ‘죽제이층장’도 모습을 들어낸다. 대나무로 제작해서인지 섬세함과 정교함이 묻어있다. 대나무의 둥근 곡면이 빛의 편광 효과를 흡수해 시각적으로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19세기 전기 전서와 예서로 이름을 날렸던 서예가 유한지(1760∼1840)의 8폭 병풍‘음중팔선가’도 출품된다. 유한지가 1820년 늦가을 두보의 음중팔선가 칠언시를 나무에 새긴 작품이다. ‘음중팔선가’는 당나라 때 술과 시를 사랑했던 시인 8명의 추태와 면모를 시적 운치로 묘사한 음류시다. 특히 지난 2010년 유한지의 '기원첩'(綺園帖)이 대한민국 보물(제1682호)로 지정된 만큼 그의 8폭 병풍이 더욱 주목된다.
일본 메이져 경매에서 치열한 경합을 통해 환수한 우리 문화재 주칠사방탁자 등 2점도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한 때 ‘하마다 쇼지 기념관’에 소장한 이력을 갖고 있어서 더욱 눈길을 끌 예정이다.
김경수 회장은 “한국 고미술시장의 활성화를 겨냥한다는 전시회의 절박한 사명감에 초점을 맞췄다” 며 “조상들의 손때 묻은 골동품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높고, 합리적인 가격대의 작품들만을 엄선해 행사를 꾸렸다”고 강조했다.
한편 1971년에 설립된 한국고미술협회는 현재 전국 14개 지회 약 500명의 회원들이 최전선에서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고미술품 감정, 문화유산 보호 및 선양, 학술연구 및 교육 전시 등 문화유산의 보존 및 계승, 활용에 관한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김경갑 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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