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
[대한경제=강성규 기자] 4일 국회에서 열린 정부 내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불참한 가운데 한덕수 국무총리가 연설문을 대독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9월 1987년 민주화 이후 현직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국회 개원식에 불참한 데 이어, 11년 만에 시정 내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도 나서지 않았다.
특히 이는 예산안 시정연설이 관례화 된 이후 현직 대통령이 불참한 첫 사례로 꼽힌다.
이른바 윤-명태균 녹취록, 김건희 여사 특검법 등을 둘러싸고 여야 대치가 극심한 가운데 시정연설 또한 정쟁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불참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첫해 등 특별한 사례에만 해오던 대통령의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이 매년 관례화된 것은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부터 4년 동안 매해 연설에 나섰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5년 연속 연설한 것은 물론 2022년 이른바 ‘코로나 추가 경정 예산안’ 편성 때도 국회를 찾았다.
대통령실은 야당 등의 ‘보이콧’ 비판에 대해 이같은 역사를 내세워 반박하고 있다. 대통령의 매해 예산 시정연설은 말 그대로 ‘관례’일뿐이지 제도ㆍ의무화 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일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국무총리가 시정연설에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연설이 매년 있는 것은 아니고 총리가 대신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야권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윤종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윤 대통령의 국회 무시가 참을 수 없는 수준”이라며 “김건희 여사의 공천개입, 국정농단 의혹이 정쟁인가”라고 비판했다.
여당 내에서도 곤혹스러운 기류가 강한 분위기다. 윤 대통령 스스로 국회와 소통하는 모습을 거부하면서 명태균 녹취록 공개 이후 본격화된 야당의 탄핵ㆍ임기단축 개헌 추진에 불을 지피는 것은 물론, 한동훈 대표를 주축으로 한 여당내 ‘용산 전면쇄신’ 목소리도 더욱 커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은 정부 핵심과제인 4대 개혁 본격 추진과 국민 소통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며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연설 대독에 나선 한 총리와 주례 오찬회동을 갖고 “국민들이 연내에 정책 성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현재 추진 중인 개혁 과제에 대해 각 부처의 신속한 추진을 독려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날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내각은 현재 추진 중인 개혁 정책의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연내에 잘 마무리해 달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책 성과와 개혁 추진에 대한 대국민 소통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는 의혹의 명확한 규명과 특단의 대책을 요구하는 정치권ㆍ여론의 눈높이와 동떨어진 행보라는 목소리가 여당내에서부터 나온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최근 각종 논란이 불편하고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가 걱정되더라도 새해 나라 살림 계획을 밝히는 시정연설에 당당히 참여했어야 한다”며 “거듭 가면 안 되는 길만 골라 선택하는 이해할 수 없는 정무 판단과 그를 설득하지 못하는 무력한 당의 모습이 오늘도 국민과 당원들 속을 날카롭게 긁어낸다”고 지적했다.
강성규 기자 g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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