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전력 모아 대기업에 판매
태양광 관리 플랫폼 ‘발전왕’ 6.2GW 등록
산업용 전기료 집중 인상에
20년 장기 고정가 계약 매력↑
RE100 구독 모델 선봬
“초기 투자비 없이 발전소 설치”
[대한경제=신보훈 기자] 지난달 23일 정부가 산업용 전기료를 9.7% 인상했다. 작년 11월 대기업 전기료를 4.9% 올린 지 1년도 안 돼 또다시 요금 인상분을 떠넘긴 결정이었다. 명분은 고통 분담이었다. 소비 여력이 없는 가계의 부담을 기업이 나눠지며 에너지 요금 인상을 감내하자는 격려도 뒤따랐다.
산업용 전기료 인상이 발표되고 이틀 뒤, 이영호 엔라이튼 대표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부의 이번 결정을 본 이 대표는 “태양광 전기가 더 많이 팔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량을 한데 모아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에 판매하는 직접 전력거래계약(PPA) 사업자 입장에선 전기료 인상이 호재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영호 엔라이튼 대표가 대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그는 졸업 논문으로 전력시장이 경쟁 체제일 경우 비즈니스 모델에 관한 '전력경제' 내용을 다뤘다. 이후 증권사에 취업해 발전 인프라를 자산으로 바라보는 선진 시장을 경험했고, 2016년 에너지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엔라이튼은 현재 발전소 설치, 운영, 중개 등 태양광 관련 거의 대부분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사진:엔라이튼 |
2016년 설립된 엔라이튼은 태양광 기반 플랫폼 비즈니스를 통해 일찌감치 성장 가능성을 인정받은 스타트업이다.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한 이 대표를 필두로 법인을 설립한 이듬해 한국전력공사가 선정하는 ‘에너지 스타트업’에 뽑혔고, 2021년엔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208억원의 시리즈C 투자를 유치했다. 국내 에너지 스타트업 중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나온다면 그 주인공은 엔라이튼일 것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렸다.
결정적으로, 2021년 10월 전기사업법 개정으로 재생에너지 직접 PPA 제도가 도입되면서 본격적인 사업 확장의 기회가 열렸다. 그동안 발전사는 전력거래소와 한국전력을 통해서만 전력을 판매할 수 있었는데, PPA 제도 도입으로 개인 간 직접 거래가 허용됐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그동안 ‘발전왕’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태양광 발전소를 계속 모아왔다. 현재 총 2만5900개 소의 태양광 발전소가 등록돼 있고, 발전량은 6.2GW에 달한다. 여기에 등록된 전력을 모아 기업들에 판매하는 방식이 PPA 사업”이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RE100 선언으로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에만 수요가 있었지만, 최근엔 산업용 전기료가 급등하면서 경제성 측면에서 PPA 계약을 고민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PPA 계약은 기본적으로 20년 단위로 체결된다. 수요처 입장에선 장기 고정가격계약을 통해 물가상승률이나 전기료 인상의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다. 소규모 태양광 발전사들은 정부가 입찰을 통해 선정하는 고정가격계약을 맺지 않아도 전력을 직접 판매할 유통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엔라이튼이 책임진다.
첫 번째 PPA 계약은 네이버와 맺었다. 네이버는 제2사옥인 ‘1784’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작년부터 공급받고 있으며, 운영 전력의 약 1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에는 현대차와 20㎿ 규모의 PPA 계약을 체결했다. 2026년 하반기부터 20년간 전력을 공급하는 내용이다.
그래픽: 한슬애 기자 |
이 대표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이미 ㎾h당 180원을 넘었다. 반면, PPA로 거래하면 170원대로 계약할 수 있다. 계약기간은 보통 20년이다. 이 기간에 물가상승률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고정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할 수 있는 셈”이라고 장점을 설명했다.
이어 “엔라이튼과 계약을 맺은 기업들은 전기료 상승을 고려할 때 장기 계약이 이득이라고 판단했을 거다. 1∼2년 전만 해도 재생에너지를 공급 받는다는 의미만 있었지만, 산업용 전기료가 크게 오른 지금 시점에선 지금 당장 유리한 선택지가 됐다”라며, “PPA 시장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됐다. 지금보다 더 많은 수요처가 생기고, 사업이 고도화 하면 다양한 계약 구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엔라이튼은 PPA 사업 외에도 ‘RE100 구독 모델’을 판매하고 있다. 기업이 유휴 공간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설치 및 운영해 자체 소비하고, 잉여 전력은 판매할 수 있게 도와주는 모델이다. 태양광 설치 비용은 엔라이튼이 전액 부담한다. 그 대신 매월 발전량에 따른 구독료만 받는다. 기업은 초기 투자 비용 없이 자가발전이 가능하고, 엔라이튼은 안정적인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식이다.
그는 “그동안 태양광 발전소를 시공하거나 초기 투자비를 위해 금융을 연결하거나 발전량 예측, 거래 등 필요한 서비스를 하나씩 늘려왔다. 이 모든 서비스를 합친 모델이 RE100 구독이다”라며, “대규모 발전사업을 하는 대기업들은 수주 베이스로 발전소 하나를 일회성으로 지으면 그 발전용량 안에서 사업 확장이 멈추지만, 우리는 스케일업이 가능하다. 에너지 시장은 계속 바뀐다. 그 변화에 대응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아나갈 계획”이라고 방향성을 밝혔다.
신보훈 기자 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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