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겸 교수 피터 쿡( Sir Peter Cook)경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로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대한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사진=전동훈 기자. |
[대한경제=전동훈 기자] 높은 하늘과 따뜻한 햇살 사이로 가을 정취가 그윽하게 묻어나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시청역 앞은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이날 국민대와 시청 강연을 위해 서울을 찾은 건축가 겸 교수 피터 쿡 경(Sir Peter Cookㆍ88)은 호텔에 들어서던 중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도시 풍경을 응시했다. 이내 덕수궁의 고즈넉한 처마와 시청 광장의 현대적 실루엣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의 눈이 반짝였다.
1960년대 아방가르드 건축그룹 ‘아키그램’을 이끈 건축계 원로의 눈에 비친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피터 쿡은 이날 <대한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한국 건축계가 더 과감한 실험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한강변의 획일화된 개발 방식을 언급하며 “서울은 훌륭한 강을 품은 도시인데, 고속도로와 잡다한 땅으로 둘러싸여 가능성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개개인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건물을 짓기 전에 새롭게 조성될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련의 경험들(sequence of experiences)을 상상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다음은 피터 쿡 교수와의 일문일답.
건축가 겸 교수 피터 쿡( Sir Peter Cook)경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소공로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대한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전동훈 기자. |
-건축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육군 장교를 지낸 부친의 영향이 컸다. 당신께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시설을 건립하는 일을 도맡았는데, 빈 땅에 새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이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머니는 종종 함께 미술관을 찾아 예술적 감수성을 일깨워주셨다. 부모님을 통해 자연스럽게 건축 세계에 발을 들인 셈이다.
-피터 쿡은 어떤 건축가인가. 추구하는 건축 철학은 무엇인가.
본능적으로 실험하는 사람이다. 건축가인 동시에 예술가이고 교육자이며 비평가이기도 하다. 건축은 공간, 빛과 그림자의 질감, 사물의 존재감까지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다. 단순한 구조를 넘어 계절에 따른 빛의 변화나 꽃의 색깔까지 고려해 설계한다. 또 건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보다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주는지에 관심이 있다.
-피터 쿡의 건축 여정을 관통하는 핵심어 중 하나는 ‘실험정신’이다. 그 중심에는 시대를 풍미한 건축그룹 ‘아키그램’이 자리한다. 아키그램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보나.
당시 우리는 건축계의 보수적이고 경직된 관행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아키그램을 구성하는 6명의 멤버들은 서로 다른 학교 출신에, 음악 취향도, 옷 입는 스타일도 달랐다. 최연장자와 최연소 간에는 무려 10살 차이가 났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 모두가 후일 교육자가 되었다는 것인데, 이 또한 우리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됐다. 되돌아보니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아키그램의 가진 최대 자산이었다고 본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영국 건축가 고(故) 자하 하디드(Zaha Hadid)와의 인연도 특별했다고 들었다.
자하는 내 오랜 벗이자 소중한 동료였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내 건물 준공식장에서였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영면에 들게 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고 다음날 미국으로 떠난 그녀로부터 마이애미발 비보를 전해 들었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적인 자리에서는 강단 있고 결연한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 그녀는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다.
피터 쿡(Peter Cook)과 콜린 포니어(Colin Fournier)가 공동설계한 오스트리아의 ‘쿤스트하우스 그라츠’ 모습. |
-한국 건축을 어떻게 평가하나.
수준은 높지만, 자신감이 부족해 보인다. K-팝과 현대미술 등 한국 예술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 한국이 해외 건축가들의 작품을 수용하는 개방적인 태도도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건축적 표현의 다양성이 다소 제한적이고, 교육 시스템이 다분히 보수적인 점은 향후 극복해야 할 한계다.
-이른바 ‘건축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어떤가.
가령 일본 도쿄는 기이하고 예측불가능한 매력이 있다. 하나의 거리에서도 다채로운 건축 언어가 어우러져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영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섬나라이고, 대륙의 문화를 받아들였지만 그것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해 고유의 정체성을 구축해냈다.
-한국은 최근 심각한 주거 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건축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보나.
주거는 전 세계적인 도전과제다. 런던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해결책은 단순히 고층 건물을 짓는 것에 있지 않다. 오히려 숲속에 고층건물을 짓는 것처럼 새로운 시도들이 필요한 때다. 창의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 건축가들이 도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건축가의 역할도 변화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건축가는 여전히 축적된 경험과 예술적 직관을 토대로 창조적 사고를 펼치는 주체다. AI는 정교한 연산과 데이터 패턴 분석을 수행하는 첨단 도구로서의 역할에 국한될 뿐이다. 건축물이 인간에게 전달할 공간적 경험의 깊이와 정서적 울림은 오롯이 건축가의 고유한 성찰 영역으로 남아있다. 예측 불가능하며 비정형적인 인간 고유의 창의적 발상만이 건축의 혁신적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한국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조언한다면.
다른 건축가의 작품을 무작정 모방하려 들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길 바란다. 실수를 두려워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 책상에 앉아 답을 찾으려 애쓰기보다는, 주저없이 세상을 관찰하고 탐험하길 권한다. 그 여정 속에서 발견한 통찰들이 모여 자신이 구축하려는 건축 세계의 원천이 되어줄 것이다.
■ 피터 쿡은?
1936년 출생으로, 본머스 예술대학교와 AA스쿨을 졸업했다. 1960년대 초 영국 건축계에 새 바람을 일으킨 아방가르드 건축그룹 ‘아키그램(Archigram)’의 창립 멤버 중 하나다. 그가 27세였던 1963년, 거대 구조체에 캡슐형 주거를 끼워 넣는 방식의 도시 구상 ‘플러그인 시티’를 제안해 건축계에 파장을 일으켰다.
2002년 ‘영국 왕립 건축가협회(RIBA) 골드 메달’을 수상했고, 건축가 경력과 교육 분야 공로로 2007년 기사 작위를 수여 받았다.
주요 설계작은 △쿤스트하우스 그라츠(오스트리아, 2003년) △비엔나 법과대학 및 대학본부(오스트리아, 2014년) △본머스 예술대학(영국, 2016년) 등이다.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건축 드로잉으로 건축 이론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를 오가며 강연과 전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동훈 기자 jd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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