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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도시의 생명력을 붓끝으로 깨워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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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11-24 14:59:08   폰트크기 변경      
국내 화단의 간판급 ‘빛의 화가’ 김성호 화백, 대구 갤러리 동원에서 개인전



저 멀리 도심 불빛이 야트막한 산턱까지 휩쓴다. 쏟아지는 밤빛의 기세가 좋다. 도심 주변에 찰랑거리는 고요가 밀물처럼 번진다. 평생 화가로 살아온 부침의 세월이 막 깨어난 여명처럼 이랬다. 붓과 물감을 손에 쥐고 평생을 꿋꿋하게 불빛처럼 살았다. 국내 화단의 간판급 ‘빛의 화가’ 김성호 씨(63)에게 그림은 인생의 파도를 견디게 해준 반려자 같은 존재다. 고비마다 그림 작업은 위안이 돼 주었다. 붓을 들고 작업실로 향하면 모든 시름이 물거품처럼 꺼진다. 자신이 벼랑 끝에 섰을 때도 붓을 들고 갠버스 앞에 서면 모든 것들이 거짓말처럼 정리가 됐다. 그림은 그의 인생에 조미료 같은 구실을 한 셈이다. 그렇게 화가로 살아온 시간이 60대 초반의 그를 또 한번 전시장으로 불러냈다.

김성호의 '새벽'                                           사진=갤러리 동원 제공


지난 20일 대구 갤러리 동원에서 개막한 ‘김성호 개인전’은 화업 40년을 맞아 도심 불빛과 여명에 대한 감성의 실타래를 뽑아내는 특별한 자리다. 더구나 이인성, 이쾌대 등 대가들이 활동한 사실주의 화풍의 성지인 대구에서 열린다는 점이 더욱 각별하다.

김 화백은 양평 서종 작업실에 파묻혀 죽어라 그림에만 매달려 대차게 꾸린 ‘예술 보따리’를 풀어놓는다. 도심의 생명력을 빛줄기로 잡아낸 작품을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공유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말이 따뜻하다.

영남대 미대와 대학원을 나온 김 화백은 5년 전 깊은 산자락과 청평호수 인근에 위치한 경기도 양평 서종으로 찾아들었다. 현대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환한 빛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다. 프랑스 인상파 거장 클로드 모네가 빛을 그리기 위해 지베르니 정원을 가꾼 것처럼.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멈추고 캔버스 위로 무대를 옮겼다. 그는 거기서 불빛에 이글거리는 야경 만큼 몸을 낮춰서 작업을 했다. 땅에 엎드리다시피 하며 붓질을 이어갔다. 그 순간 파라다이스 같은 환희가 넘쳐 흘렀다. 희미한 불빛이 잠든 도심을 깨운다는 사실을 지각했다.

사실 우리가 본다는 것은 우리가 유용한 것만 지각할 뿐이다. 각성을 하고 새로운 눈을 가져야만 우리는 비로소 신의 영역을 예측할 수 있다. 김 화백도 별빛 그 너머의 진정한 지각을 보았을 것이다. 신의 소리, 생명의 소리다. 아마도 김 화백의 도심 불빛의 생명력도 그런 것일 게다.

갤러리 동원 전시장에 걸린 김성호 화백의 작품.                              사진=갤러리 동원 제공


1층 전시장을 채운 20여 점의 ‘새벽 그림’은 문학적 상상력과 회화적 에너지를 단순한 선과 선명한 색채로 응축한 대작들이다. 불빛 아래 일렁이는 해변, 자동차가 꼬리를 문 도로, 네온사인과 휘황찬란한 조명이 깜박이는 홍콩 마천루 건물, 어둠을 가로지르는 체코의 소도시 등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아스라한 기억의 편린들을 떠올리게 한다.

김 화백은 “이번 전시는 정치·사회적으로 혼탁하고, 경제적으로 부대끼는 삶에서 ‘행복한 빛’를 퍼뜨리기 위한 시도”라고 했다.

작가는 화업 40년 내내 수많은 사람들이 컴컴한 고난 속에서도 ‘희망의 두레박’을 건져올리는 ‘마술사’ 역할을 자처했다. 어두운 도심, 팽팽한 긴장감, 넓게 퍼져 있는 불안감 등 현대사회의 단면만을 골라 화면 깊숙이 채워넣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과 중첩된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황폐해져가는 자신의 감성을 치유하듯 일종의 자가 처방전을 화면에 담아내려 했다.

“빛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죠.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빛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싶어요.”

오로지 붓끝을 ‘희망 미학’의 극점으로 몰아붙이는 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역작을 구상할까.

김 화백은 “빛을 품은 새벽, 평화로움과 고요함, 빛의 역동성과 분주함을 담았다”며 “나만의 독특한 해석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벽 빛줄기가 도심의 건물과 해변 등에 마술처럼 번지는 짜릿한 지점을 잡아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검정 파랑 노랑 회색 등 다양한 색감으로 풍경을 스케치한 다음, 빛줄기와 시간의 빠른 템포를 버무린다. 원경, 중경, 근경의 구도는 물론 하늘 위에서 보는 듯한 시점과 넓은 화면 대부분을 과감히 어둠으로 처리하기도 했다. 자연과 불빛이 하나가 된 풍경들은 그대로 화폭 속에 이야기로 들어앉는다. 중첩된 굵은 선묘와 감각적이면서 자유분방한 여백의 미도 매력적인 요소다. 그는 “형상만을 보려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며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를 포착하려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의 그림이 묘한 향수나 추억, 고독감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작가는 문학적 감성을 극대화해야 소설이나 시처럼 여운이 묻어나는 것처럼 회화 역시 상상력을 최대한 응축해야 좋은 작품이 태어난다는 주장도 폈다. 단순한 외적 형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니 만큼 스피드한 리듬감과 스토리를 확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미술평론가들이 그의 작품을 ‘희망의 후광’과 ‘여명의 리듬감’, ‘새벽을 여는 시적 아우라’라고 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작품 앞에서 던진 한마디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하필 새벽의 빛에 관심을 갖는 이유요? 어두운 것을 뚫어주기 때문이죠.”  전시는  다음달 7일까지 이어진다. 

김경갑기자 kkk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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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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