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에 집에서 나와 평소와 다름없이 지하철 2호선을 탔다. 수인ㆍ분당선으로 갈아타려는데 플랫폼으로 오르는 계단이 사람으로 꽉 막혔다. 평소에도 혼잡했지만, 이 정도 인파는 처음이었다. 평소 “네 줄로 서세요”, “오른쪽으로 올라오세요”라고 느긋하게 안내했던 질서유지 직원들은 이날 “올라오지 마세요! 올라오지 마세요!”라고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아! 철도노조가 태업한다고 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는 다른 출근 ‘루트’를 선택했다. 2호선으로 시작해 3호선으로 갈아타고 버스나 도보로 출근하는 코스였다. 그런데 이 역시 며칠 지나지 않아 그리 탁월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태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정차시간이 길어졌고 배차간격도 평소보다 길게 느껴졌다.
그래도 며칠 전처럼 꽉 막힌 환승역에서 멈춰 서버리는 일은 없으니 다행이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많은 인파는 불편을 넘어 공포로 느껴진다. ‘파업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라며 ‘똘레랑스(Tolerance)’하게 불편을 감수할 수 있겠지만, 위험까지 감수하기는 쉽지 않다. 이참에 노조도 시민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방식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동시에 짚어봐야 할 대목이 이런 상황을 초래한 이유다. 일단은 임금인상률에 대한 노사의 입장 차이가 크다. 게다가 사측이 신규채용 억제는 물론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노측의 주장이다. 사측 입장에서는 공사의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다. 게다가 지하철 안전에 대한 투자 여력이 줄면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사실 출퇴근시간 때마다 지하철이 미어터지는데도 적자가 쌓인다면 요금수준에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국내 지하철 요금은 외국에 비하면 저렴한 수준이다. 그러나 시민들이 요금인상을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고 물가 상승이 걱정인 중앙정부도 탐탁지 않아 한다.
지하철과 함께 대도시 대중교통의 양대 축인 버스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마을버스는 서울시가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열악한 근무조건에 기사가 부족하고 고령화도 심각하다. 서울시가 외국인 기사 도입을 추진하고 나섰지만, 반감이 적지 않다.
‘서울에 가면 꼭 지하철을 타보라’고 할 정도로 우리 대중교통은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한다. 이런 서비스를 현재의 요금으로 계속 누릴 수 있는 해법은 없을까. 지금으로서는 중앙정부의 지원 말고는 해법을 찾기 쉽지 않다.
특히, 지하철 적자의 주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노인 무임승차는 지자체나 공사의 정책이 아니라 정치권과 중앙정부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을 중앙정부가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대중교통 곳곳에서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해법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서울시나 서울교통공사 등과는 달리 중앙정부는 느긋해 보인다. 안전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다. 이를 지켜야 할 의무는 지방정부만이 아니라 중앙정부에도 있다. 이런 곳에 세금을 쓰지 않는다면 어디다 쓴다는 말인가.
김정석 정치사회부장 js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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